전도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다. 그를 가르치고 설득하여 교회에 오게끔 하는 것이 전도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도자가 가르치는 듯한 자세를 취할 때 상대방은 마음을 열지 않거나 상처를 받고 떠나기가 쉽다.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통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여, 그가 가진 기독교에 대한 의심과 오해를 풀어 주고, 믿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주는 과정이 그 대화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저자 정소리 작가는 전도란 구원의 여정을 걸어가는 중에 만난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 정의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일방적으로 내 말만 쏟아 놓고 복음을 선포한 후 ‘나는 하는 데까지 했어. 이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는 내 몫이 아냐’라고 생각해 왔던 전도의 그 방법과 개념이 바뀌게 될 줄로 바란다.
저자는 책 속에서 “그렇다면 왜 다음 세대는 예수님을 떠나가고 있을까? 왜 하나님의 나라라는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일까? 그것은 이 세대에게 맞는 방식으로 예수님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고전 9:20-21) 되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자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성세대에게는 기성세대처럼, MZ세대에게는 MZ세대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사람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동기가 부여되었다면 그 방법론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도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그것을 각각 자신이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들었다. 본문의 사건은 물론 특수한 이적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 신념에 도달하였는지 진단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오해를 풀어 주고 복음으로 인도할지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함으로써 상대가 가진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하였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많은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고 결국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끔 했다. 그와 달리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그들이 틀렸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으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예수를 주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대화의 내용이 다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분명한 방향성과 목적성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예수님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대화는 전도다.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뿐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혹은 착각하는) 사람들과도 전도를 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딱히 ‘전도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예수님께 사로잡혀서 모든 말과 행동에 예수님이 담겨 있는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