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참사] '빠른 수습' 요인은?

사건·사고
뉴시스 기자

노량진 상수도공사장 수몰사고가 희생자 보상문제가 해결되면서 수습국면으로 들어섰다.

2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의 중재 하에 시공사와 유족대표 간 4차례에 걸쳐 협의가 진행돼 전날 자정 무렵 위로금 등 보상에 관한 합의가 이뤄졌다.

보상규모는 협의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언론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 관례상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다. 다만 유족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결정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로써 지난 15일 참사가 발생한지 닷새 만에 상황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여타 참사보다 빠른 수습…3일장 치른다

우여곡절 끝에 17일 구로 고려대병원에 7명의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될까지만해도 보상금 규모에 대한 시공사와 유족간 이견차가 컸다.

통상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대형 사고의 경우, 외부적 요인이 개입하기 용이해 고인들이 영면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가장 최근의 예로 2009년 1월20일 과잉진압 논란 끝에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용산참사의 경우, 희생자들의 장례는 사건 발생 후 355일이 지난 2010년 1월9일에야 치러졌다.

노량진 사고 발생초기 공사 발주처인 서울시의 '늑장대응' 논란이 불거진데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박원순 시장 책임론을 적극 부각시켜 정쟁화 함에 따라 보상금을 둘러싼 합의가 도출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게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가 중재자로 나서 시공사와 유족간 빠른 협의를 유도, 발인은 21일 오전으로 결정됐다.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3일장'의 모양새가 갖춰진 셈이다.

◇유족들의 성숙한 대응…몸싸움·고성 드물어

예상보다 이른 합의가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 무엇보다 유족들의 성숙한 대응이 사태 해결의 첫 단추를 채웠다는 평가다.

이번 사고처럼 인재(人災)의 정황이 뚜렷할 경우, 감정이 격해진 유족들과 사고 책임 주체간의 갈등은 필수적이다. 통상 고성에 이은 거친 몸싸움은 사태 해결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더욱이 이번 참사 희생자들은 국적이 혼재한데다 일용직과 직영직원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어서 유족간 의견조율도 쉽지 않아 보였다.

물론 일부 유족들은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시공사측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몇몇 유족은 새누리당 환노위 간사 김성태 의원이 취재진을 대동하고 유족들을 찾으려 하자 "언론 플레이 하지 말라"며 거센 항의를 벌여 방문을 무산시켰다 .

협의과정에서 불만을 품고 시청 앞에서 장기농성을 벌이자고 주장하는 유족이 나와 제2의 용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사고현장에서 사흘간 밤을 새다시피 한 수십 명의 유족들은 혈육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놀랄만한 자제력을 발휘해 대책위를 조기에 가동, 이날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소방대원 분투…死地서 시인 인양

합의까지의 물리적 시간을 앞당긴 것은 시신수습을 사흘 만에 마무리 지은 119구조대 등 소방당국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라는 박수갈채도 나온다.

사고로 침수된 지하터널은 빗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시야확보가 되질 않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잠수부 투입을 통한 실종자 수색은 자칫 제2의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소방당국은 국민적 관심을 고려, 배수와 수중수색을 병행하는 등 분투를 벌였다.

밤샘 구조작업이 계속되자 빗물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스티로폼 위에서 잔뜩 웅크린 채 쪽잠 자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어 취재진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시신을 조기에 수습함으로써 사태 장기화에 따른 시의 부담을 덜어줬고, 유족들의 슬픔을 일부나마 달랬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박원순式 위기관리…유족들 의견 최대한 반영

빠른 사태 수습을 계기로 박 시장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재평가도 나온다.

예기치 못한 참사는 10·26 보궐선거 이래 비교적 순탄하게 시정을 이끌어오던 박 시장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였다.

'만찬을 즐기느라 현장 도착이 늦어졌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온라인상에서 나돌기도 했다.

이후 시장의 실제 동선이 시간대별로 공개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박 시장이 쌓아온 서민 이미지가 한순간 추락하는 위기였던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사고 발생 초기 '책임 감리제'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제한적 개입을 주장하는 일부 시 공무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시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시가 시공사와 유가족간 보상금 협의에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도록 하는 한편 시 차원의 TF를 구성, 시신수습부터 장례절차, 보상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약자인 유족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토록 했다.

본인 스스로도 사고 당일부터 분향소가 마련될 때까지 3차례에 걸쳐 현장을 찾아 유족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등 사태수습에 일조했다.

이번 참사가 유족을 비롯해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은 아직 여전하다. 하지만 유례없이 빠른 사태수습이 유난히 대형 참사가 잦은 우리사회가 새로운 대응시스템을 찾는데 일종의 방향타를 제시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노량진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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