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들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가나안이 아니라 엉뚱하게 이집트에서 성취된다. 그러나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억압과 혼돈의 세상인 이집트 아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이어야 한다. 그 축복의 땅으로 가기 위해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극적으로 빠져나온다. 성경의 독자들은 창세기를 읽고 난 후 곧바로 이어지는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대하지만, 두 책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출 1:8)란 표현에서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오늘날 마구잡이로 갖다 붙여 쓰는 ‘엑소더스’는 이렇게 무질서 · 공포 · 허무 등 부정적인 색채가 강하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둘 것은, ‘엑소더스’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주도해 나가시는 하나님과 그의 구원의 대상인 이스라엘이라는 존재를 빼놓고서는 도저히 생각해볼 수 없는 개념이다.
김준수 – 출애굽기를 캐스팅하다
하나님은 나를 선택했고 끝까지 버리지 않으셨다. 인생의 길목에서 나를 질식시킬만한 두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진실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나와 맞서는 원수를 찾아봐도 찾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와 싸우던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를 도우신 여호와 하나님이고 나의 오른팔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내 삶에서 승리의 노래이고 자랑이자 이정표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독일로 끌어내셔서 오직 하나님의 도움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아넣으셨다. 내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인생 난간에서 절망하며 삶에 지쳐 인생 한계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셨다. 나는 이 말씀을 깊이 깨닫고 나의 세속적인 삶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구별되게 살기로 결단했다. 그렇게 순종했을 때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하나님께서 나와 내 자녀들에게도 복을 받게 하는 것이 나의 단순한 소망이었다.
정승식 – 독일 광산에서 캔 보화
잠언 1장 32절 말씀에 두 가지 단어가 눈길을 끕니다. ‘퇴보’와 ‘안일’입니다. ‘퇴보’는 앞으로 전진하거나 성장하지 못하고 점차 뒤로 처지는 모습이고, ‘안일’은 간절함과 열정이 사라진 채로 지금의 자리에 머무르려는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두 단어 사이에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안일한 마음이 퇴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안일은 분명 지금의 자리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뒤로 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나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해서 가만히 있고 싶은데, 결국 뒤처지게 되는 것일까요? 결국 분노와 조급함과 시기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왜 내 맘대로 되지 않는가? 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이 성취되지 않는가? 왜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 그 사람에게 허락되었는가? 이 질문들의 칼끝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노와 조급함과 시기를 극복하는 길 역시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일을 주관하시고, 시간의 주인이시며, 내게도 많은 재능과 은사들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럴 때만이 분노와 조급함과 시기에서 놓여 평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겸손히 인정하기 바랍니다.
이혜진 – 아침 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