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故 김명혁 목사가 한국교회에 준 ‘큰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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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원로 김명혁 목사가 지난 18일 향년 87세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오전 춘천에 있는 산천무지개교회에 설교하러 가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했다.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나와 미국 훼이스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예일대학교신학원, 아퀴나스신학원(Ph.D.),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과 튀빙겐대학교 등 수많은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목사 안수 후 영안교회를 거쳐 강변교회에서 28년간 목회하고 지난 2008년 은퇴했다. 합동신학교 교수와 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등의 직임을 맡아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인은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 후 국내외 교회와 복음주의 관련 단체 등에서 말씀을 전하며 복음 사역을 지속해 왔다. 특히 시골의 작은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말씀을 전하는 걸 긍지와 보람으로 삼았다. 사고를 당한 날도 춘천에 있는 교회에 설교 하러 가던 중이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더욱 먹먹해진다.

전국에 있는 교회들을 돌며 설교를 전해온 고인은 항상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날의 설교문을 올려 한국교회와 공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개인 홈피엔 춘천 산천무지개교회에서 전하려다 끝내 하지 못한 그날의 설교문이 그대로 게재돼 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회개의 기도와 순종과 섬김의 삶’(마 4:17, 눅 24:47,48, 계 2:7, 엡 6:1-8)이라는 제목의 설교문에서 회개와 순종, 섬김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귀중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보다 먼저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라며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먼저 들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 죄인들이 우리들의 부족한 죄악들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일”이라고 했다.

고인은 설교에서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당당히 순교의 길을 택한 고 주기철 목사를 △하나님 중심적 목회자 △기도와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 △사랑과 섬김의 사람으로 소개했다. “‘기도와 말씀’과 ‘사랑과 겸손과 섬김’과 ‘순교’의 영성을 몸에 지니고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며 순교의 피를 흘리셨으면서도 성도들과 자기를 박해하는 원수들에게까지 한없는 용서와 ‘사랑과 겸손과 섬김’을 베풀다가 주님 품에 안기셨다는 말로 설교를 마무리했다.

김 목사를 기다리다 갑작스런 비보를 접한 산천무지개교회 윤재선 담임목사는 교인들 앞에서 침통한 심정으로 고인이 전하려던 설교문을 대신 읽었다고 한다. 그는 고인에 대해 “생애 마지막까지 시골교회를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려는 열정을 가지셨다”며 “마지막까지 순종과 섬김의 모습으로, 복음 전함의 사명을 다하셨다. 한국교회의 큰 별이 졌다”라고 추모했다.

지난 20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엔 교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전 총장 박형용 박사는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신 분”이라고 했다.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는 “한국 복음주의계의 거목이신 목사님 한 분을 잃었다. 든든하고 중심을 잡고 어려울 때마다 대안을 제시해주신 어른”이라고 추모했으며, 경동교회 원로 박종화 목사는 “김 목사님은 민족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종교인 모임의 좌장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23년 동안 일해오신 분”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주관으로 거행된 천국환송예배에서 회고사를 전한 예장 통합 증경총회장 림인식 목사는 고인을 구약성경의 ‘다니엘’에 비유했다. 다니엘이 10대 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후에도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을 섬겼던 것처럼 고인도 10대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북에서 월남하는 등 갖은 역경을 오직 신앙의 절개로 이겨낸 것을 강조한 것이다.

고인의 선친인 김관주 목사는 북한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끝까지 교회 강단을 지키다 46세에 평양 감옥에서 순교했다. 고 한경직 목사가 개척한 신의주 제2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다 후에 담임목사로 9년간 교회 강단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 또한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이 실로 지대하고 깊었다. 복음적 사명 완수를 위해 누구 보다 앞장섰으며,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여 한국교회 교육자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남북의 복음적 평화 통일을 위해 애쓰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또 한기총 공동회장과 한교연 명예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교회 연합운동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선친의 순교신앙을 그대로 이어받은 김 목사가 한국교회에 남긴 커다란 족적은 신앙의 후배인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본받아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고인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은 한국교회에 큰 슬픔이자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고인이 한국교회의 복음적 순수성을 위해 걸어온 열정과 발자취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만큼 크고 심대한 공헌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평생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해온 그는 생애 마지막이 된 설교에서 ‘회개하라’, ‘기도하라’, ‘순종하라’를 강조했다. 이 세 마디가 한국교회에 주는 큰 울림이 있다. 김명혁 목사님! 부디 하나님 품 안에서 안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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