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가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범국가 대책팀’을 구성할 것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기공협)는 지난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국가 소멸 위기에 다다른 저출산 문제는 이제 정부 부처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와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주문했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2023년 0.72명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엔 0.68명까지 떨어질 것으로서 예측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 합계출산율 1.59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 이렇게 가다간 국가 소멸의 심각한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기공협이 윤 대통령에게 ‘범국가 대책팀’ 구성을 제안한 건 갈수록 심각해지는 출산율 제고에 방점이 있지만 이런 사태에 제대로 된 해법을 강구해야 할 정부의 안이한 인식 또한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서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이민청’을 신설하고 해외 유학생에게 문호를 여는 방안 등이 거론되는 것에 대한 교계의 우려하는 시각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아이돌봄’ 확대 방안을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 교육부는 초등학교에서 돌봄과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늘봄학교’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시범 도입한 ‘늘봄학교’를 올해는 1학기에 2천 개 이상의 학교에 적용하고, 2학기에는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도입하겠다는 건데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어 학부모의 부담이 크게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아이돌봄’ 방안은 아이가 있는 기혼 가정의 부담은 덜어주겠지만, 저출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엔 여전히 미흡하다는 게 기공협의 판단이다. 즉 결혼하지 않는 비혼이나 늦게 결혼하는 만혼 풍조를 바꾸는 것 또한 시급하다는 것이다.
기혼 가정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아이를 낳아 돌보고 교육하기가 힘든 환경에 있다. 정부가 아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만혼과 비혼이 증가하는 세태야말로 합계 출산율 저하의 매우 중요한 원인이란 점에서 이 문제 해결에 더욱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게 기공협의 생각이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실질적인 정책과제는 부위원장을 필두로 산하 조직에 의해 진행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들과 일부 전문가들로는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게 이미 드러난 현실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전격 교체했다. 김영미 부위원장이 취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전직 관료로 다시 교체한 건 저출산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다만 다시 부위원장을 경질하게 된 건 윤 대통령이 지난해 저출산위 전체회의에서 특단의 대책에 주문했으나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게 결정적인 이유로 보인다.
전임 김 부위원장의 경우 임명 초기부터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여성이 낙태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저출산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프랑스에서 실패한 ‘등록 동거제’를 저출산의 대책으로 내놓는 등 오히려 저출산을 부추기는 정책을 내놔 혼선을 빚기도 했다.
‘등록 동거제’, 즉 동거를 법적으로 인정한 프랑스 등 유럽의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동거제도의 도입으로 결혼율이 급감하고 혼외출산아의 비율은 급증한 대신 오히려 출산율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데 있다. 아무리 동성혼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제도라 하더라도 이미 실패한 모델을 저출산 해법이라고 내놓고 있으니 차라리 ‘저출산위원회’ 간판을 내리고 ‘저출산추진위원회’로 바꾸라는 조롱이 쏟아질 법하다.
정부는 올해 저출산 해결에 연간 약 11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리어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게 저출산위에 대한 세간의 냉정한 평가다. 이러니 세금 낭비를 넘어 세금 도둑이란 말까지 나오는 게 아니겠나.
저출산 문제는 이제 외국의 전문가들까지 걱정할 정도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윤 대통령이 저출산위 부위원장을 벌써 세 번째 교체한 것만 봐도 이 문제 해결에 역대 어느 정부보다 사활을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공협이 윤 대통령에게 저출산 국난 극복을 위한 국가 비상사태를 주문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정책 입안은 정부와 저출산위가 주도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정부 혼자 짐을 지기엔 너무나 중대한 사안이고 더 지체할 시간도 없다. 종교계, 여성계, 학계, 시민사회, 기업 등 사회 각계각층이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자는 교계에 제안에 정부가 망설일 이유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