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무대에서만 활약해 온 여배우가 시카고에서 공연될 '브로드웨이 시리즈'에 직행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웨딩싱어'와 '드림걸스', '에비타' 등 한국서 공연된 뮤지컬 히트작을 통해 잘 알려진 김소향이다.
브로드웨이 시리즈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파라마운트 씨어터가 매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시카고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공연 행사이다.
올해는 '렌트'와 '42번가'에 이어 세 번째 시리즈로 '미스 사이공'을 오는 10월 30일 파라마운트 오로라 극장에 올린다.
'미스 사이공'에서 김소향은 '지지'역을 맡는다. 주인공 '킴'과 함께 큰 비중의 캐릭터로 바에서 벌어지는 미인대회에서 '미스 사이공'에 뽑히는 여인이다. 극중에서 지지가 부르는 노래, 'The Movie in My Mind'는 미스 사이공의 대표곡 중 하나로 뛰어난 가창력을 필요로 한다.
김소향의 '미스 사이공' 출연은 미국에서의 배경이 전무한, 순전히 한국에서만 연기 훈련을 받고 무대 경험을 쌓은 기성 배우가 미국의 주류 무대로 처음 직행했다는 점에서 한국 뮤지컬계의 경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구나 '미스 사이공'은 미 전역에서 최고의 아시아계 배우들이 몰려드는 각축장이어서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배우가 경쟁을 뚫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로 평가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김소향이 이 공연을 통해 전미배우조합(AEA : Actor's Equity Association의 약자)의 멤버로 등록됐다는 것. AEA는 미국 내 배우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종의 연합단체로, 브로드웨이를 포함한 미국의 연극계는 이 단체에 소속된 배우들에게 우선적으로 출연 기회를 준다. AEA에 등재되지 않고 미국 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에서 메인 롤을 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AEA 자격 획득은 '미스 사이공'의 연출가 짐 코르티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이루어졌다. 짐 코르티는 김소향에게 에퀴티 오디션(AEA 자격을 갖추기 위한 오디션)에 먼저 응시케 한 다음 캐스팅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서 '미스 사이공'에 출연하는 것이 배우로서의 오랜 꿈이었다는 김소향. 2011년 9월 한국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겠다는 일념으로 뉴욕에 온 그녀는 "미스 사이공은 시카고에서 오디션을 한데다 AEA 자격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지난 4월 자료를 우편으로 보냈는데 거짓말처럼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놀라운 일은 계속됐다. 그녀를 보기 위해 짐 코르티 연출가가 직접 뉴욕까지 날아온 것이다. 짐 코르티는 직접 노래를 녹음하고 '웨딩 싱어' 공연 비디오를 보내며 자신을 알린 김소향의 열정과 재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김소향은 "시카고라는 대도시에서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는 공연이고, 미국 전역의 쟁쟁한 배우들이 도전하는 꿈의 무대이지만 실패해도 해보자는 간절한 바램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마지막 걸림돌이 있었다. 영어 발음이었다. 한국 사람이 들으면 좋은 발음이 분명했지만 원어를 구사하는 미국 배우들에 비교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소향은 "부족한 발음을 대사만큼은 반드시 교정하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더 분명한 신체 표현과 연기로 보완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더니 코르티 연출가가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꿈만 같던 순간을 돌이켰다.
김소향은 얼마 전 뉴욕 동포들을 위한 창작 뮤지컬 '6개월 클럽'에서도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다. 현재 뉴욕에서 뮤지컬 '올리버(Oliver)' 에도 출연 중인 그녀는 공연이 끝나는대로 시카고에 합류할 예정이다.
뉴욕한인사회에서 창작 뮤지컬 붐을 선도한 '6개월 클럽'의 임홍주 연출가는 "쉼 없는 노력에 열정과 성실한 자세로 일궈낸 대한민국 여배우의 쾌거가, 세계 무대 진출을 꿈꾸는 대학로의 배우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