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소장 박상진)가 교목전국연합회·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한국기독교학교연합회·한국기독교학교연맹과 공동으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재 경신중고등학교 언더우드기념관에서 ‘고교학점제와 기독교학교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긴급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박상진 소장이 ‘사립학교의 시각에서 본 고교학점제(비평적 성찰)’ ▲김성천 교수(한국교원대)가 ‘(고교학점제 상황에서)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와 건학이념 구현 가능성’ ▲김종화 교목(명지고)이 ‘고교학점제가 가져올 기독교사립학교의 위기와 대책’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고교학점제란
먼저, 발제를 한 박상진 소장은 “최근 우리나라 교육, 특히 중·고등학교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교육정책의 변화로 고교학점제를 들 수 있다”며 “고교학점제란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여,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제도’”라고 했다.
박 소장은 “그동안의 국가 교육과정이 중앙집권적인 것이었고, 교사중심 교육과정이었다면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학생 맞춤식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과 재능, 그리고 꿈과 끼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며 신장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그 누적 학점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2021년에 고교학점제의 도입 기반이 마련되었고, 오는 2025년도 전면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 고교학점제의 문제점
그러나 “고교학점제가 지니는 여러 가지 강점, 특히 학생의 다양한 관심과 선택을 존중하는 교육과정, 진로, 적성 중심의 교육과정, 학교 간 네트워크 및 지역과의 연계 교육과정이라는 점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육정책이 지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고교학점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기초학력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 하는 전제가 있으며,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설정할 수 있는 역량이 구비되어야 하고, 입시제도 자체가 고교학점제와 연계될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 하며,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체제가 가능한 교육평가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역 간 교육 수준의 형평이 이루어져야 하며,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 분야를 교수할 수 있는 교사진이 건강한 방식으로 형성되어야 하고, 지역 인프라가 지역별로 균형있게 형성되고 이를 교육과 연계시킬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하는 등 고교학점제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며 “이러한 여건이 형성되지 않은 채 실시되는 고교학점제는 수많은 부작용과 역기능이 발생될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시행착오적인 교육정책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상적인 고교학점제 실시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이 절대평가제의 입시제도의 확립을 통해 고교 교육이 입시위주 교육이 아닌 진로, 적성 중심 교육으로 전환되는 것”이라며 “그러나 2023년 12월 27일에 교육부가 발표한 2028년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에 따르면 수능의 상대평가가 유지되고 고교 내신도 5등급 상대평가로 이루어지게 된다”고 했다.
이어 “교육부는 내신 상대평가 9등급을 5등급으로 조정하고 절대·상대평가 병기 방식을 택한 것은 경쟁교육의 폐해를 완화하고자 함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입시에 있어서 상대평가로 인한 경쟁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방안임이 분명하다”며 “국가교육위원회의 의결을 받아들여 심화수학(미적분II, 기하)은 수능에 포함시키지 않고, 사회, 과학 교과의 융합 선택과목은 석차 등급을 미기재하기로 했지만, 처음 개편안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개편안으로 확정이 된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 과학, 직업은 모두 공통으로 상대평가의 수능을 치르게 되고, 제2외국어 및 한문 9과목 중 택일하는 부분만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이러한 상대평가 중심의 대학 입시제도가 그대로 존속되는 상황에서 과연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여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입시제도가 상대평가 중심으로 그대로 존속하는 한 고교 수업 자체가 입시위주로 운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 학교의 다양성 무시하는 교육정책
박 소장은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 속에서 과연 고교학점제 방식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 그리고 학업 수준에 맞는 교육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고교학점제는 1974년 고교평준화로 인한 국가 주도의 획일적 교육에 대한 반성 또는 보완의 의미가 있고, 그래서 학생에게 교육 선택권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학생중심의 교육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왜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철저하게 막으면서 과목 선택에만 집중하는 것인가”라며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립학교가 존재하도록 하여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도록 하지 않고 ‘학점’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인가”라고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교육선택권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학교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교육정책이라는 점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축소시키고 이로 인해 사립학교의 건학이념과 정체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신장하고, 학생의 다양한 관심을 충족시키는 가장 중요한 교육제도는 학교의 다양화”라고 했다.
이어 “사립학교의 존재 이유도 다양한 특성을 지닌 다양한 학교들이 존재함으로 학생들의 관심과 적성에 맞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며 “그런데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다양한 관심을 강조한다고 하면서도 사립학교마저 공립화하여 중앙집권적 통제를 하고 있는 정책을 그대로 둔 채 학생이 교과목만 선택하게 하는 것은 일관되지 않은 교육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 고교학점제 시행, 총체적인 대책 세워야
박 소장은 “고교학점제는 그동안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이었던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정상적인 교육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며 “여전히 상대평가 중심의 입시제도 속에서 고교학점제는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고, 고등학교 교육은 무늬만 고교학점제이지 실은 입시위주의 교육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학교당국, 교육전문가, 교사와 학부모들은 고교학점제가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총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특히 “종교계 사립학교는 고교학점제의 시행으로 인해 종교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됨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한국교회도 기독교사학과 함께 진지하게 대책을 세우고, 종교계 사립학교는 물론 전체 고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외·내부적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하여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나아가 고교학점제를 계기로 그동안 뒤틀리고 정체성을 잃어버린 종교계 사립학교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학교선택권 확대, 바우처 제도 시행 등 정책적 대안도 제시하여야 한다”며 “그리하여 고교학점제를 계기로 오히려 종교계 사립학교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종교교육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고교학점제로 인한 미션스쿨의 어려움 돌파하려면
이어서 두 번째로 발제한 김성천 교수는 “고교학점제는 우리에게 양가적 감정을 제공한다”며 “고교학점제의 가치와 지향점 자체는 사실 교육의 본질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우리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촉구함을 의미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고교학점제로 인해 미션스쿨이 가지는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몇 가지 시사점은 먼저, 교육과정 철학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며 “둘째로 대입 기조에 한계가 있지만 학생부종합전형, 교과전형, 수능이라는 세 가지 조합을 고려해야 하며, 셋째로 학생의 참여와 주도성 등을 발현할 수 있는 수업을 모색해야 하고, 넷째로 과제연구나 과제탐구·학교자율과정·창체 등을 잘 활용해야 하며, 다섯째로 고시외과목, 학교장 신설과목 등 별도의 교과목 개발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교학점제의 부담과 현실적인 어려움, 구조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성찰을 바탕으로 학교교육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며 “고교학점제를 단순히 편제 차원의 논의로 국한하기보다는 철학, 목표, 비전, 인간상, 역량, 핵심 성취기준 증에 주목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교육 3주체의 민주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 교육과정 문해력의 극대화,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질 향상과 학교와 학교 간 연대, 교과목 개발, 학교를 대상으로 교육지원청과 지자체의 지원(서비스)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 다양한 수업과 교육, 고교학점제의 근본 취지
다음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김종화 교목은 “2022 교육과정에 따라 2025년에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에서는 교육의 주도권이 학교에서 학생으로 넘어가며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선택한다”며 “나아가 인터넷 학교를 통한 학생들의 과목 선택과 수강은 현재 사립학교 교원의 수업과는 별개로 진행된다. 익숙한 학급에서 진행된 학습 분위기는 이동 수업, 공강, 인터넷 강좌를 통한 자율적 학습으로 바뀐다. 이는 교육과정의 다변화를 예고한다”고 했다.
김 교목은 “2022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따라 학교의 교육과정이 운영되기에 사립학교의 특성과 특색에 따른 교육과정 운영은 상실된다”며 “학급 중심 시간표 운영과 활동들은 각자 학생 중심으로 변동되어 공동체 활동 및 운영이 어려워지고 학점 취득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학교에서 핵심적인 채플과 종교 과목을 통한 신앙교육의 특색은 퇴색하고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획일화된다”며 “학생들만을 중심으로 학교의 특색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교육과정만을 강제하는 것은 학교 공동체들의 특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했다.
또한 “국가는 사립학교 커리큘럼의 자율성을 확대하여, 설립목적에 의거 세워진 자율적 교육과정을 보장하고 특성 있는 건전한 교육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며 “세워진 교육과정과 보이지 않는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수업과 교육은 고교학점제의 근본 취지이기도 하다”고 했다.
아울러 “기독교사립학교의 활발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목실이 운영하고 있는 채플, 종교교육, 인성교육, 생명 존중, 다양한 문화 공연 및 나눔 봉사 활동 운영을 위한 인력 및 재정적 후원과 교육과정의 자율적 운영이 보장되고 육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는 토론 순서로 모두 마쳤다. 토론에는 김진훈 교사(숭의여고)·최재훈 교사(전주신흥고)·함승수 사무총장(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최정서 학생(경민고)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