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라클’ 박위 “십자가에 비하면 제 고통 아무 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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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음악협회 주최 ‘2024 아티스트 개더링’서 간증
한국기독음악협회가 5일부터 7일까지 경기도 광주 소재 광림수도원에서 ‘2024 아티스트 개더링’을 개최한다. ©최승연 기자

한국기독음악협회가 5일부터 7일까지 경기도 광주 소재 광림수도원에서 ‘2024 아티스트 개더링’을 개최한다. 이 자리는 기독교 문화를 이끌어가는 단체와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은혜를 나누는 수련회다.

행사 둘째 날 6일 오전 특강 시간에는 유튜브 채널 ‘위라클’을 운영하는 유튜버 박위 씨가 간증했다. 그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영국에서 유학을 하며 어머니와 제 동생과 같이 살았었다. 영국에서 거주했을 당시 IMF가 터졌고 당시 제 아버지가 한국에서 생활비를 벌어서 영국을 보내주셨는데 당시 원화 가치가 너무 많이 하락해서 생활이 굉장히 어려웠다. 저와 제 어머니, 동생은 쉐어하우스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저희 어머니는 우리 가족보다 더 어려운 한인 유학생, 이민 온 가족들에게 늘 진심으로 넉넉하게 베푸셨다”고 했다.

그는 “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왜 그러시느냐’고 매번 물어봤지만, 어머니는 제가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미소만을 지으셨다. 그러다가 경제 사정이 더 어려워지면서 우리 가족은 다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다시 영국에 갔을 때 당시 어머님이 섬기셨던 현지 한인분들께서 어머니께서 섬기셨던 것을 기억하고 서로 모시겠다고 했다. 이를 보면서 저는 어머니가 베풀고 나눴던 것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저도 어머니처럼 살도록 조금씩 노력했다. 그 결과 제 삶은 물질적으로 얻을 수 없는 행복과 소중한 인연들로 풍요로워졌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 ‘위라클’을 운영하는 유튜버 박위 씨가 특강 시간에 간증했다. ©최승연 기자

 

취업 성공 그리고 찾아온 전신 마비의 시련과 재활 과정

박위 씨는 “지금부터 9년 전 대학교에 다니면서 취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가 취업을 할 때쯤 지금처럼 굉장히 취업난이 심했다. 그리고 제 학점도 좋지 않아서 취업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다. 그런데 제가 옷을 입는 것과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패션 관련 기업에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외국계 패션 기업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운 좋게 취업을 하면서 저는 기분이 좋았고 제 인생이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가듯 완전히 풀렸다고 생각했다. 저는 주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열심히 일한 저에게 보상을 주었는데 바로 세상의 쾌락이었다. 저는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클럽을 다녔다”고 했다.

이어 “한 번은 토요일에 술을 많이 마시고 주일날 교회에 가서 하나님에게 ‘하나님 저는 세상의 쾌락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죽을 때쯤 됐을 때 그때 언제든 하나님께 돌아갈게요’라고 기도했다”며 “입사하고 6개월 뒤 정직원 제안을 받았고 저는 기쁜 마음에 친구들과 정직원이 된 기념으로 파티를 열어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 그런데 제가 눈을 다시 떴을 때 저는 우리 집이 아닌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박위 씨는 “깨어났을 당시 의사 선생님께서 저에게 ‘당신은 앞으로 전신 마비로 살 것입니다. 손가락도 절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하루아침에 전신 마비 신세가 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저는 술에 취해서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추락을 했는데 목이 완전히 부러져서 척추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다. 저는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저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도 힘들지 않았다”며 “제가 사고를 당한 것을 접하시고 응급실에 오셔서 의식이 없는 제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다. 제 아버지는 제 모습을 보시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셔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침착하게 교회 성도님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저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마취하고 수술을 하면 의식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서 수술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빨리 의식이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많은 사람이 저를 둘러싸서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고 있었는데 제 의식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제 아버지가 저에게 ‘위야 일어나’라고 하셨으며 이 한 마디에 제가 11시간 만에 갑자기 의식이 돌아오게 되었다. 아버지의 한 마디에 저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저의 어머니는 크리스천이지만 아버지는 당시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책을 많이 읽으셨고, 지적이셨지만 기독교를 그저 하나의 종교로 생각하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항상 대화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박위 씨는 “그런데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3일째 되던 날 아버지께서 저에게 ‘위야 너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믿어볼게’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전신 마비가 된 상황과 저희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게 된 사실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계셨다. 혹시나 친구 혹은 그 주변인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사고 이후 3주가 지났을 때 기적적으로 제 새끼 손가락이 미세하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제 동생은 그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기뻐했다. 병원에서의 삶은 치열했다. 저는 침대에서 누워 지냈으며 가족들은 제가 욕창에 걸리지 않기 위해 2시간에 한 번씩 몸을 뒤집어야 했고 저의 병수발을 들어주었다”며 “하루는 밤에 제 아버지가 침대에서 저의 대변을 치우시는 모습을 보고 저는 아버지한테 등을 돌린 채로 아버지 목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저는 아버지가 아들의 뒤처리를 하는 것이 싫었고 그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처음 제가 입원했을 때 저희 가족은 저를 위해서 간병인을 고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저는 간병인에게 저의 이런 모든 민낯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박위 씨는 “제 옆에서 제 동생은 저의 병수발을 들어주었고 병수발을 위해 한 학기를 휴학하고 24시간 6개월 동안 제 옆에 있어 주었다. 정말 동생에게 감사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동생에게 ‘너에게 장애란 무엇이야?’라고 물어봤다. 동생은 저에게 ‘장애는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묶어준 하나의 끈’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했던 이유는 가족 모두가 저를 돌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원에서의 생할은 생각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으며 많은 분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응원해주셨다. 특히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학생들과 교회 분들이 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예배도 많이 드려주셨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보내셔서 저와 우리 가족들을 위로하셨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제가 입원했던 병원은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이었는데 전쟁 같았던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저녁에 항상 기도실에 갔었다. 기도실에 간 이유는 예전의 저로 돌아가고 싶었고 예전에 건강하게 뛰고 걷던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가 다른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게 되었다. 제가 당시 흘린 눈물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긍휼의 마음이었다. 당시 병원에는 저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은 재활 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저에게 ‘너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너는 너와 비슷하게 아픈 사람들, 또 세상에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반드시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셨다”고 했다.

박위 씨는 “6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마치고 나서 퇴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 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고 감이 오지 않았다. 퇴원하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 가족은 저의 병수발을 들어주었고 저는 ‘내 인생은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살 수 없으므로 내가 반드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재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재활하기 시작했다. 처음 휠체어를 타고 재활을 했을 때 혼자 10m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꾸준히 노력하여 50m, 100m, 500m, 1000m 이렇게 혼자서 갈 수 있는 거리를 늘려놓게 되었다”고 했다.

건강해진 육체, 그러나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신앙

그러면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재활한 결과 휠체어에서 침대로 혼자 갈 수 있게 되었고 상체 힘을 키우기 위해 혼자서 운동을 꾸준히 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저는 재활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다시 건강해지고 있었지만, 제 신앙은 오히려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저는 재활하면서 처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전처럼 다시 일어서서 걷고 뛰고 축구를 하고 싶다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듣고 계시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제 기도가 뭔가 하나님께 전달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매일 하는 기도가 똑같았기 때문에 예배 시간이라도 기도가 잘 안 되고 하나님께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저에게 ‘우리 이제 다시 공동체 생활을 하자.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여 저는 못이기는 척 교회 청년부에 들어갔고 청년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위 씨는 “청년부 예배를 드리면서 청년부에서 기도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와 가까워졌고 같이 여름 수련회에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련회 가는 것을 거절했지만, 친구의 끈질긴 권유로 용기를 얻고 수련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수련회에 갔지만, 여전히 저와 하나님의 관계는 냉랭했다. 수련회 마지막 날 밤 집회 시간에 설교 시간이 끝나고 기도회 시간에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대신에 오늘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만 저에게 꼭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공동체 목사님께서 ‘치유 기도를 받고 싶은 사람은 강대상 위에 올라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와 다른 친구가 저와 함께 단상 위에 올라갔다”고 했다.

중보기도를 통해 다시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

이어 “단상에 올라가서 중보기도를 받는데 그때 저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것이 중보기도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고 느끼게 해주셨다. 기도하면서 저를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기도를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저의 부족한 믿음을 아시고 중보기도의 실체를 보여주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셨다. 그러자 저는 기도해 주신 많은 사람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 울면서 엄청나게 회개했고 그렇게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위 씨는 “저는 모태 신앙으로서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교회 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공동체 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면서 신앙적으로 성숙하게 되었다.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공유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기도하는 것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만드셨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더 깊기 느끼고 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청년부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간증할 기회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사랑하는 지체들의 기도 제목을 놓고 서로를 위해서 중보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저는 다리를 쓸 수 없고 손가락도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뭔가 엄청난 일을 해야지만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제가 부족할지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저 열심히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베풀 수 있길 소망한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 '위라클'이 시작된 계기

박위 씨는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위라클’은 사람을 살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상에 기적을 바라고 몸과 마음이 아픈 자들에게 삶의 소망을 던지기 위해 채널이 만들어졌다. 채널을 운영하면서 한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목사님의 아들이 저처럼 척추 신경이 손상되어서 전신 마비가 온 것이었다. 저는 목사님과 하루 2시간 2주 동안 연락을 하면서 ‘믿음을 가지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다행히 목사님의 아들은 저처럼 호전이 되었고 제 유튜브 채널 편집자로 4년간 활동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저는 정말 놀랍다고 느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에 비교하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것이라고 주장했던 내 삶이 나의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기에 나는 새 생명을 얻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회개 기도를 드리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떠오르게 되었다”고 했다.

진정한 기적은 우리의 삶 그 자체... 현재 누리고 있는 것 바라보며 나아가길

박위 씨는 “제가 사고를 당하기 전 저는 제 손으로 밥먹고 스스로 용변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감사하며 살지 않았다. 그런데 전신 마비가 되어 걷지 못하고 그렇게 혼자서 할 수 없게 되자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상들이 결국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적과도 같은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기적이라고 하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갑자기 눈을 뜨거나 혹은 초현실적인 현상을 떠올린다. 하지만 기적은 지금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저와 그리고 여러분의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 부족한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있는 것,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가 고난의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이 생긴다고 본다. 하나님은 항상 약한 자를 세우셨다. 하나님은 연약한 저를 지금까지 이렇게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는 연약하므로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셨다. 언제 어떻게든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가서 충분히 사랑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길 축복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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