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경신학회(대표 이승구 목사)가 5일 오후 신반포중앙교회당 대예배실에서 제52차 정기논문 발표회를 ‘요한서신 주해와 설교’라는 주제로 개최했다.
논문 발표에 앞서 드려진 예배는 장세훈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본회 서기)의 사회로 드려졌으며 이승구 목사가 ‘생명, 교제, 기쁨’(요한일서 1:1-4)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진 논문 발표에서 김현광 박사(한국성서대학교 신약신학)가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요한일서 1:9-2:17)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김 박사는 “요한일서에는 ‘말씀’이라는 단어가 1장과 2장에 등장한다. 말씀이라는 단어는 요한이서나 요한삼서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요한일서에만 사용되고 있는데 1:1, 1:10; 2:5, 2:7, 2:14에 나타난다. 본 연구에서는 ‘말씀’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요한일서의 본문을 고찰하며 사도 요한은 이 부분에서 말씀을 따르는 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며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2:17)가 되라는 권면을 주고 있음을 고찰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요한일서에서 말씀이라는 단어는 1장 1절에서부터 등장하며 ‘생명의 말씀에 관여하는’이라는 언급에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지만, 요한복음 1장 1절과 연관시켜볼 때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언급하는 생명의 말씀을 성육신하신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1:10, 2:5, 2:7, 2:14에 사용된 ‘말씀’은 가르침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또는, ‘계명’, ‘하나님의 뜻’과 연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특히 1:9-2:17에 사용된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말씀’에 주목하여 이 부분에서 요한이 드러내는 말씀과 관련된 그의 가르침과 교훈을 탐구하려 한다”고 했다.
김 박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한 요한의 가르침은 1:10에 등장하는데 죄와 관련한 문맥에서 등장한다. 요한은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면’이라고는 말을 통해 범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어떤 무리들을 염두에 둔다. 죄가 없다는 주장의 심각성은 1)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며 2)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한의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죄를 인식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했다.
이어 “요한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악행이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죄를 깨우치며 죄를 자백하여 사함을 받도록 초청하신다.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전하며 이 말씀을 마음에 받아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죄 용서의 복음을 선포한다”며 “말씀(1:10)은 말씀을 받은 사람이 죄인임을 깨우치며 죄를 자백하게 만들 뿐 아니라 죄 용서의 방법과 근거를 가르친다. 2:1-2에서 요한은 독자들에게 말씀을 다시 한번 전달하고 있는데 그 핵심 내용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죄를 범한 우리의 대언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우리 죄를 위한 대언자가 되실 수 있는 이유를 요한은 2:2에서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제시한다. 더 나아가 요한은 죄 용서의 말씀은 우리 뿐 아니라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말씀임을 일깨운다”고 했다.
김 박사는 “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연결시키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계명을 지키는 행위가 동반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참으로 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하나님을 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요한이 이전에 다루었던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는 주장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가 죄가 없다’(1:8) 또는 ‘범죄하지 아니하였다’(1:10)는 주장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어서 요한은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고(1:8)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며(1:10)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한 것이요(1:8)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한 것(1:10)이라고 진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한의 관점에서 볼 때 말씀은 죄를 깨우치고 회개하게 한다.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씀이 그 안에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말씀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든다. 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됨을 경험한다. 요한의 수신자들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 즉 옛 계명이며 새 계명인 말씀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형제 사랑은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새 계명으로 새롭게 지켜야 할 복음의 핵심 메시지이다. 요한에게 말씀은 승리의 비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는 자는 강하며 흉악한 자를 이긴다”고 했다.
끝으로 김 박사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영원히 거하는 비결이다. 요한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사랑은 대립됨을 가르친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다. 사도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이 세상과 그 정욕은 지나가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 즉 말씀을 행하라고 촉구한다.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라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이다”고 했다.
이어 강대훈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신학)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요한일서 4:7-5:4a)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강 교수는 “요한일서 4:7-5:4a의 주해를 통해 몇 가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데 첫째, 사랑의 출처는 하나님이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므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형제와 자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이 사랑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교회는 사랑하도록 태어났다(4:7-8). 요한일서의 문맥에서 교회의 이탈자들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참 자녀들과 명목상의 자녀들은 형제와 자매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여부로 차이를 보인다. 하나님의 사랑이 추상적이지 않았듯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추상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입증한다(5:1-3)”고 했다.
그는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우리의 죄를 위해 세상에 보내시는 것으로 나타났다(4:9-10, 14).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셨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안에 거한다(4:9, 14). 하나님이 이런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신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도록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 제물이 되셨다. 속죄 제물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 마련하신 자비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속죄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윤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량 없는 사랑에 대한 감사의 반응이다”고 했다.
강 교수는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를 사랑하고(4:11-12)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상호 내주하는(4:13-16, 17) 우리 안에서 온전해지고 목표를 이룬다.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의 구주와 속죄 제물로 보내신 목적은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고(4:20-2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19절). 형제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분리되지 않은 사랑의 계명이다(4:20-21). 기독교 신앙의 동심원에서 사랑의 계명이 중심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어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는 신자들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고 속죄 제물로 죽었음을 믿는 것이다(4:9-10, 15). 세상을 구원하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육체로 오시고 속죄 제물이 되신 성자를 믿는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세상을 이긴다(5:4a)”고 했다.
끝으로 강 교수는 “요한일서의 맥락에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우리’와 달리 교회를 떠나고 거짓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목격자들이 전한 사도적 전통에서 벗어났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속죄 교리를 복음의 본질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속죄의 죽음만이 세상을 구원할 길이고 죄를 해결 받아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