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또 보니, 이런 대화를 마칠 무렵 두 사람은 들판 한가운데 있는 진흙투성이 늪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두 사람은 졸지에 진창에 빠지고 말았다. 그 진창은 낙심(Despond)의 늪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등에 짐까지 지고 있던 크리스천은 수렁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는 먼지투성이 응접실 장면은 로마서 7장 7~10절에 기록된 바울의 체험과 관련 있다. 율법은 죄를 지적하며, 율법만 강조하면 우리 삶에서 죄의 권세가 커지고 자신의 죄성에 대한 자각이 커진다. 율법은 우리 죄를 없애 주지 못한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물을 받아들여야만 청결해질 수 있다. 어떤 소설이든 처음 몇 페이지를 읽을 때 그렇듯, 첫 장에서는 더듬더듬 길을 찾아 나가다가 점차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옹고집과 팔랑귀라는 인물의 등장은, 크리스천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때 이런저런 인물들에게 영적 여정을 방해받을 것이며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경우 곁길로 빠져 탐구의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게 되리라는 첫 번째 암시다.
존 버니언 - 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받고(갈 5:24)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마 16:24). 그러나 이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끊임없이 훈련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심판 날에 당신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닌 얼마나 많이 순종하였는가를, 얼마나 말을 잘하였느냐가 아닌 얼마나 바르게 살았는가를 판단 받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기대하는 것은 성도가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이 아닙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며 나아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이 세상과 당신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무장되어 더 이상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향한 사랑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토마스 A, 켐피스 - 사순절 40일 경건훈련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가 왜 이러지? 참 바보 같아!” 자신에 대해 크게 실망스러워 괴롭고 힘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리새파 율법주의의 중심인물이었던 바울은 금식하고 십일조 생활을 하며 철저하게 율법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은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방탕하게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회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의로는 누구보다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엄격하게 지켰기에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겉모습이 그랬지, 마음속은 달랐습니다. 속으로는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죄를 지었고, ‘이러지 말아야지’. 아무리 거듭 다짐해도 부끄러운 모습은 반복되었습니다. 죄의 법 아래로 자신을 사로잡아가니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롬 7:19-20)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가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속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송규의 – 사순절을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