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을 막을 길은 정녕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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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신성욱 교수

최근 인기 있는 남자 배우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많은 팬들과 국민들이 큰 슬픔에 빠진 적이 있다. 아무리 악하고 죄 많은 이라 하더라도 망자(亡者)에 대해서 손가락질하거나 욕하는 이는 별로 없다. 더는 이 땅에서 볼 수 없고 그 존재 자체가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맞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 돌을 던질 자가 누가 있으랴! 그래서 떠난 이도 ‘그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글을 남기고 간 것이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그리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땐 동정의 여지가 많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더 버텨낼 수 있었을까’란 질문을 던졌을 때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란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장례를 치르기까지 많은 친지들과 동료들과 지인들이 조문을 위해 찾아온다. 그때 공통적으로 하는 한 마디가 있다. “이젠 좋은 데서 편하게 쉬세요”라는 말이다.

망자를 향한 최대한 배려의 말이요 마지막 위로의 한 마디다. 그가 신앙을 가지고 안 가지고와 상관없이, 또 사후세계나 천국과 지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 땅에서의 모든 근심과 염려, 아픔과 상처 다 내려놓고 떠나시라는 위안의 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불편함이 꽤 많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신의 죽음은 영원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과 입문일 뿐이다.

죽음 이후엔 심판이 있고, 사후세계가 있다. 짐승과 달리 사람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원래 상태인 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은 육체란 집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평소 자기가 믿고 산 대로 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영생하게 된다. 이 땅에서의 삶이 짧지 않다 해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비하면 ‘새 발의 피’(鳥足之血)다. ‘지옥에서의 영원’이냐 ‘천국에서의 영원’이냐가 남아 있다.

지옥에서의 영원은 죽음보다 못한, 세세토록 경험하는 ‘고통의 연속’이다. 반면 삼위 하나님과 천사들과 앞서간 성도들이 함께하는 천국에서의 영생은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다. 이 두 세계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행복해서 자살하는 이는 없다. 자살하는 모든 이는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견딜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이 땅에서 처절하게 맛보는 고통과는 족히 비교가 안 되는 영원한 고통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제대로 안다면 그런 식으로 그 길을 택할 바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정말 잘 살아야 한다. 남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은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남들에게 시달릴 정도로 죄를 짓거나 허물을 보이는 일을 해선 안 된다. 물론 억울하게 왕따 당해서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음을 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우주와 이 땅과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와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이 존재함을 불신자들에게 많이 알려야 한다. 죽음 이후엔 심판이 있고 지옥과 천국 둘 중 한 곳으로 가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고후 5:10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또 요 5:2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심판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이 선명하게 대조되어 있음이 보이는가? 이렇게 성경은 무시무시한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서의 영생, 그리고 천국에서의 대조적인 영생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설교자들의 설교 속에 ‘지옥과 천국’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전도할 때에도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라는 내용은 있으되 ‘불신 지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왜 이리 되었을까? 20세기 말, 세상을 어지럽힌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탓이 크다. ‘종말’이나 ‘지옥’이나 ‘천국’ 얘기만 나오면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이상한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예수님 재림 날짜를 정하는 건 잘못된 것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말과 심판을 외쳐야 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아니라 ‘불신 지옥’만 외쳐도 전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불신 지옥’을 외쳤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고 말이다. 정말 망할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심판을 선포했다. 그런데 그의 선포를 듣고 지위 고하를 막론해서 하나님을 믿고 또 왕이 집안에 있는 짐승들까지 금식을 시키고 베옷을 입게 해서 통회자복하면서 처절한 회개를 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사 재앙을 내리지 않고 살려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 천당’이 아닌 망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불신 지옥’을 외쳤음에도 놀라운 회개의 역사와 위대한 구원의 결과가 나타났음을 보라. 어찌 우리 앞서 믿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억울한 일로 인해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자살하려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은 오늘 하루만 해도 무려 40명 이상이나 되는 소중한 생명들이 허무하고 비참하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의 종지부를 찍곤 한다. 이런 일들이 매년 거듭되고 있음에도 강건너 불구경하고만 있다면 어찌 되겠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국가나 UN이 하지 못하는 일을 누가 해야 하겠는가? 우리 기독교와 기독교인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상한 자세로 진리를 알고 있는 자로서 종말과 재림과 심판과 사후 세계에 대해서 더 널리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