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매체의 변화와 조용기목사: 새 술은 새 부대에
과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땅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바다를 차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은 대서양괴 태평양을 누가 지배하느냐가 잇슈였다. 지금은 하늘을 누가 장악하느냐 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현재 바다와 하늘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처음 선교를 시작했을 때, 장로교선교사와 감리교선교사는 각각 한국땅을 분할해서 나누었다. 당시는 농촌사회였다. 그리고 분할된 땅에 교회를 세웠다. 하지만 해방 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조용기목사는 바로 산업화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 산업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였고, 도시화 시대에 도시를 중점적으로 선교하여 오늘의 순복음교회를 만들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매체의 장악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우선 전통적인 활자매체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교회내의 신문이었던 [순복음]을 만들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서 신앙계를 발간하였다. 신앙계의 발간은 당시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신앙계를 통하여 전달되는 순복음의 소식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당시 교계에는 지성인을 향한 기독교사상이나 평신도들을 위한 새생명(루터교)도 있었지만 신앙계의 대중성을 능가할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방송설교였다. 순복음의 메시지는 활자보다는 음성으로 듣는 것이 훨씬 강력하였다. 조용기목사의 설교는 기독교계통의 방공만이 아니라 일반 방송에서도 전파되었다. 필자는 1970년대 말 시골에서 목회를 하였는데, 그곳에서 주일 오후에는 조용기목사의 설교를 듣곤하였다. 조용기목사의 메시지는 이미 교단의 벽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용기목사가 보다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TV이다. 잡지와 라디오 방송을 넘어서서 TV방송은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다. 조용기목사는 한국에서 최초로 TV방송을 시작하였다. 당시 TV는 새시대의 상징이 되었고, TV에 나오는 조용기목사는 일종의 스타가 되었다. 당시 아이들의 노래가 “나도 한번 TV에 나오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였다.
필자는 조용기목사가 한국교회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국민일보의 창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87년에 민주화가 시작되고, 이어서 88년에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당시 통일교에서는 세계일보를 만들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했는데 조용기목사는 국민일보를 만들어 기독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용기목사는 한국기독교를 대변하는 일간지를 만들고자 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일간지는 오직 국민일보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국민일보는 한국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되었는데 그 주역이 조용기목사였다. 모든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이 국민일보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입장을 밝혔다. 국민일보는 한국기독교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필자는 한 시대의 주도권은 누가 매체를 장악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중세 천주교는 그림과 조각으로, 종교개혁은 문자와 팜플렛으로, 19세기 부흥사들은 잡지로, 20세기의 오순절부흥사들은 방송과 TV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조용기목사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가서 일간지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국가나 교회는 다같이 국민일보를 기독교의 주요 매체로 인정하였다. (계속)
#박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