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사회정의 이념은 세상 모든 문제의 기원을 잘못된 사회체제에서 찾으려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만든 잘못된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와 사회구조가 인간 불평들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분배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신마르크스주의 이념의 기반을 제공한 안토니오 그람시는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 문화가 노동자의 혁명 의지를 약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독교의 기반인 가정을 파괴함으로써 부르주아 문화의 근원인 교회를 파괴하고 노동자가 문화주도권(cultural hegemony)을 잡으면 공산혁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성경적 세계관은 모든 문제의 기원을 타락한 인간 개인에게서 찾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사회정의에서 주장하는 것이니까.”라며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한 사람의 타락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타락했기에 개인적 측면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든 관계를 죄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죄 문제의 해결과 구조적 문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포르노 산업은 매년 높은 이익을 거두고 있으며, 그 수익을 지속하기 위해 인신매매나 성 착취라는 구조적 죄악이 계속되어야 한다. 가족계획협회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낙태 산업이나 낙태아 신체조직의 불법 매매 조직이 연결되어 있고, 성별 정체성의 자기 결정권은 제약회사와 의료산업의 수익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이미 우리 사회 속에 똬리를 틀고 수익구조를 만들어 놓은 체계적인 죄악의 구조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성경과 사회정의는 겉으로는 어느 정도 의견을 같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양자가 접근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사회정의 이념은 개개인을 구속하고 있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파괴하여 개인을 해방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반면, 성경은 오직 개인에 전파되는 복음과 변화된 개개인을 통해 악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힘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기존의 도덕과 법질서를 무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 약자 최우선의 PC 주의, 성 소수자의 인권이 최우선이라는 젠더주의와 결합한 사회정의 이념은 자기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힘의 전술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면 괴롭힘, 조리돌림, 위협, 입막음, 굴욕주기 등이다. 이들은 상대와 토론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사용하기 때문에 사회가 각박하고 험악해진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공격에 대해 똑같은 힘의 전술로 대응하거나, 그들의 겁박에 굴복하여 입을 닫고 세상의 공격에 대해 스스로 단절하고 숨어 살라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추천하지 않는다. 먼저 우리는 그들의 말에 귀를 막지 말고 잘 들어야 한다. 그들이 하는 말 중에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너무 속히 판단하거나 함부로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을 자제하며, 웃는 얼굴로 경청하고 차례를 지키면서 품위 있게 말해야 한다. 이는 대면 상태의 대화뿐만 아이라 SNS의 댓글이나 문자, 이메일 내용에서도 같이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그들의 말에 대응할 것인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먼저 기도하며 성령님께 항상 답을 구하면서 대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이것은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수세적으로 담을 쌓고 의사 표현을 포기하며 살아온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문화를 더 좋은 것으로 바꾸려면, 그리스도인들의 세상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의사를 표현할 때는 분명한 복음적 방식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문화를 형성하는 교육, 예술, 영화, 문학, 예능, 비즈니스 분야는 모두 사회정의 이념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하고 수세에 몰려있는 동안 그들은 이 영역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결과일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그들이 형성한 기존의 문화를 대체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추세는 지속될 것이고 오히려 세속 문화가 교회 안으로 더 많이 들어 올 것이다. 우리가 침묵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다른 방법으로라도 그 일을 하실 것(눅 19:40)이라 말씀하셨다.
복음으로 세속 문화를 대체할 새 문화 즉 세상에 대항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며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는 믿음의 선진들이 당한 고난들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은 이런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히 11:38)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