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한 분이심(삼위일체)을 믿는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의 초창기부터 신학의 중요한 주제였는바, 특히 20세기 중후반 이후로 삼위일체신학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의 신학적 공헌이 아주 컸다. 저자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예일 신학대학원 신학/윤리학)와 미하엘 벨커는 볼트만의 제자로서 그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삼위일체신학에 관한 도서를 집필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삼위일체가 관념상의 교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일치, 우정, 젠더, 생태,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함의를 지닌다는 점을 역설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단순한 결합과는 달리 친교는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전제한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 따라서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확장하면 모든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방식과 하나님이 존재하는 방식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을 근본적으로 결정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이런 유사성 때문에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불가능하고 낯선 명령처럼 들리는 내용을 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존중이 타자와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그리고 신뢰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경외는 생명의 모든 차원의 도덕적 지위와 가치를 기꺼이 인정하는 올바른 태도다. 그러므로 경외의 감수성과 선의 내용으로서의 화평 혹은 성화를 혼용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실천을 일으키는 감수성과 감수성의 기준과 목적으로서의 선을 혼동하는 것은 종종 슈바이처의 윤리학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인간은 생명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이 부족한 때도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이) 경외, 존중, 신뢰 같은 고상한 동기들뿐만 아니라 의무감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완전성에 관한 피조물의 지식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그것은 계시된 지식으로서 그 기원과 실현은 우리의 손을 벗어난다. 완전한 하나님은 계시자로서 자기의 모습 그대로 피조물에게 자신을 나타낸다. 신학적 이성이 하나님의 자기현시의 이런 움직임을 적절하게 따르려면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그 경륜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근거는 하나님이 자신 안에 성부·성자·성령으로 존재하는, 자유롭게 선행하는 완전성이다. 성육신 신학에서 육신이 되는되는 말씀의 영원한 신성에 관한 단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대목의 의도는 하나님의 활동으로부터 분리된 어떤 추상적인 신성을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이 참으로 하나님의 활동임을 단호하게 진술하려는 것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인간사에서 하나님이 정의를 시행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삶 내부의 정의를 반영한다. 인간사에서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삼위일체 내부의 사랑을 통합하는 정의를 반영한다. 따라서 서로 정의롭게 대우할 때 우리는 단순히 정의롭게 행동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세계 안에서 정의를 시행하는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내적 삶을 반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