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관과 문화관으로 성숙해야 함
1. 헨리 밴틸의 칼빈주의 문화관 번역
미국 칼빈대 성경 교수였던 헨리 밴틸(Henry R. Vantil, 1906-1961)는 그의 저서 『칼빈주의 문화관』(The Calvinistic Concept of Culture)에서 성경적으로 문화를 이해하고 있으며, 정통개혁신학자들, 어거스틴, 칼빈, 카이퍼, 스킬더의 문화관을 소개하고 있으며 종합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고 있다. 헨리 밴틸은 코넬리우스 밴틸(Cornelius Vantil, 1895-1987)의 조카로서 “유년기의 충실한 고문, 후에는 스승”으로서 “신학과 철학의 기본 문제를 알도록” 삼촌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피력하고 있다.
헨리 밴틸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했고,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학도중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 돌아와 시카고 대학과 가렛-성경신학교(Garrett-Biblical Seminary)에서 대학원 연구를 지속했다. 목회와 군목으로 봉사후, 미국 칼빈신학교(Calvin College) 성경 교수(professor of Bible)로서 15년간 칼빈주의 문화관을 가르친 문화신학자였다. 그는 선천 심장질환으로 1961년에 55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나 명작을 남겼다. 리처드 마우는 1972년도 판 서문에서 헨리 밴틸의 저서에 대하여 다음같이 평가로 끝내고 있다: “벤틸의 저서 『칼빈주의 문화관』은 창조 세계의 모든 영역을 자신의 것이라고 요구하시는 그분에 대한 문화적 순종의 길을 배우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탁월한 지침서이다.”
칼빈주의를 삶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근삼의 문화신학자로서의 모습은 헨리 밴틸의 『칼빈주의 문화관』 번역에서 나타난다. 이근삼은 헨리 밴틸의 『칼빈주의 문화관』을 번역하는 역자 서언에서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오늘 보수주의 기독교 신자들이 신앙 위주로 문화면을 등한시하는 잘못된 경향이 있는가 하면, 자유주의 기독 신자들은 문화면에 위주하여 근본적인 신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경향이 많다.“ 이근삼은 신앙에만 치중하고 문화를 등한시하는 보수주의 기독교 신자들. 그리고 문화에 치중하여 신앙을 등한시하는 자유주의 기독교 신자들 양자에 대하여 어느 한쪽을 등한시 하지 않고 양자를 균형있게 이행하도록 칼빈주의적 문화관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 저서를 한국 신학계에 소개하고자 하였다.
이근삼은 헨리 밴틸의 저서 역자 서언에서 신자들의 문화적 사명에 관하여 피력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첫째, 하나님 사랑, 둘째, 이웃 사랑을 요구하고, 셋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개발할 문화적 사명을 말하고 있다.”
2. 3가지 영역
이근삼은 그의 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기독인의 문화적 사명을 다음 세 가지 말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다.
1)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 삶의 중추(中樞)
하나님과의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로서 예배적 관계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이다. 이근삼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 삶의 중추가 되어야 한다고 다음같이 피력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신학의 핵심이며 출발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존엄과 영광을 강조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는 경건을 가진다. 개혁주의 신앙의 하나님은 내재와 초월을 겸유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일터에서 일할 때 인간 앞에서 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자가 되어 이 세상을 멋있게 살아야 하겠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이근삼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차적이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우리의 삶과 일터에서 항상 초월과 내재로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영광과 기쁘하심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고 그는 권면한다.
2) 사람과의 관계: 인간 삶의 전 분야에서 하나님 면전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활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근삼은 사람과의 관계를 다음같이 피력한다: “개혁주의 신학의 열매는 이웃 사랑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인간의 최후의 사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라는 것을 칼빈주의는 확신한다” 칼빈주의는 개인의 자유, 사회 속의 권위와 자유의 균형을 추구한다.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영역 주권(sphere sovereignty)이 지켜져야 한다. 이근삼은 사람 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영적, 신앙적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들의 동료 인간,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 성령으로 새 사람 된 하나님의 자녀된 형제를 바로 인식하고, 사랑과 이해, 협력과 화목으로 영적, 신앙적 공동체가 되어서 더불어 사는 신앙생활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근삼은 한국 보수주의 교인들 사이에 인간 관계가 원만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우리 교회, 교단 안에 감정 대립, 인맥관계, 지방색, 이권 등으로 불화하고 하나되지 못하고 분쟁하는 일들은 주안에서 일소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근삼의 지적은 보수교회가 독선적인 경향이 있고 교파분열이 있었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이므로 보수주의 신자들은 모두가 겸허하게 듣고 원만한 성품과 인간관계를 갖도록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아집과 교만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기 부정의 삶을 살아야 한다.
3) 세계와의 관계, 문화적 사명, 카이퍼주의 수용
세계와의 관계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땅 위에서 살아야하고, 일을 사랑하고, 문화적인 건설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신 일터다. 그는 피력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선지자의 사명과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할 제사장의 사명과 세상을 뚫고 나갈 왕적 사명을 가진 신자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일터로 주신 것이다.”
이근삼은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문화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신자는 세상에 접촉해야 한다. 신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니 소금이 되려면 세상에 접촉하여 부패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문화적 노력은 하나님 뜻에 대한 순종이다. 신자들은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데 사용하도록 해야한다: “결코 창조된 물질을 하나님이 미워하는 우상으로 삼아서는 안되며, 그것을 다스리고 주관하여, 거기서 생산되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
이근삼은 신자의 하나님 신앙은 문화적 활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인간 문화)은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것이다. 하나님 없는 문화란 성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의 문화적 활동이 모든 문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문화적 노력을 포기하는 자는 신자는 그리스도를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자기 포기, 자기 열등으로서 죄를 짓게 된다.” 개혁신앙은 자기 구원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이근삼은 역설하고 있다. 여기서 이근삼은 개혁신앙이란 자기 구원에 그치지 않고 이 세상을 섬기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여기에 개혁신앙의 공공성(公共性, publicity)이 있다.
4. 근본주의적 협착성 아닌 폭넓은 개혁신앙
이근삼은 개혁주의적 문화신학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역사적 개혁교회가 교회 안에서 그리고 신앙과 교리 수호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개인, 공동체, 사회, 국가, 역사, 자연, 우주에 대하여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세계관으로서의 개혁신앙을 가져야 할 것을 천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근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을 극단적 비판으로만 몰아가지 않고 성경적으로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며, 교회의 성장과 제도에만 집착하고 세상사에 대하여 무관심하여 부흥주의나 열광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창조 세계에 대한 문화적 위임(cultural mandate)을 인정하는 일반은총(common grace) 사상에 대한 이해를 넉넉히 제공하고 있다.
스코트랜드 출신 영국 캠브리지 역사학자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 1949- )은 “복음주의”(evangelicalsim)를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회심주의, 활동주의로 요약하였다. 복음주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경직된 사고보다 훨씬 유연하다. 개혁주의(reformed faith)는 복음주의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을 중요시한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최종권위를 주장하며, 성경무오성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 영생을 추구하며, 복음전도와 선교를 강조하며,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와 맥(脈)을 같이 한다.
개혁주의는 근본주의의 긍정적 특징에는 동의하나 부정적 특징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미국의 역사가이며 신학자인 조지 마스덴(George M. Marsden, 1939-)은 “근본주의란 화가 난 복음주의다.”라고 정의했다. 근본주의는 복음주의의 노선을 따르지만, 적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비난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몇몇 특정 비본질적인 주제들(춤, 도박과 극장 구경, 주초(酒草), 피임(避姙), 공산주의, 천주교 등 이슈들)에 대해 지나치게 전투적이며, 일반 은총교리가 빈약하며, 종말론에 있어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부흥주의나 감정주의적 경향이 있고, 신학적 자유주의를 배격하며, 지성주의를 경계하는 부정적인 기질이 있다.
이근삼은 신앙고백적으로는 벨기에 신앙고백(156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 도르트 신조(1619),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1647) 등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조를 귀중하게 여기고 계승하면서도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불트만의 비신화론화 및 실존론적 신학,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미국의 과정신학 등에 대하여는 지성적 대결을 하면서 성경적 정통신앙을 지킨다. 그리고 이 역사적 개혁신앙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사명을 화란의 카이퍼 문화신학을 계승하면서 감당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근삼의 문화신학은 일반은총 교리가 빈약한 근본주의 신학와는 다른 폭넓은 역사적 개혁신학과 대화의 장에서 교감하고 있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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