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뱅이가 예배당 헌당의 주역 장로로

오피니언·칼럼
칼럼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신성욱 교수

대구의 약령시 약전골목 이야기이다. 약전골목은 조선 시대부터 전국의 한약들이 판매되는 곳으로 역사가 350년이 넘는 곳이다. 이 약전골목, 한쪽 구석에 맨바닥에 앉아서 풀을 파는 풀장수 정 씨가 있었다. 그는 술주정뱅이로 그저 돈 한 푼 생기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고, 집에 가면 불쌍한 아내를 두드려 패곤 했다.

그런데 그 아내는 대구 제일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교회만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되고 해서 그 재미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유명한 김익두 목사가 부흥회를 오셨다. 원래 김익두 목사는 시장 입구에 다리를 쫙~ 벌리고 서서 다리 밑으로 가거나 돈 내놓으라고 시민들을 협박하며 못되게 굴었던 깡패에 술주정뱅이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고, 목사가 되어 대구 제일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다.

풀장수 정 씨의 아내는 부흥회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고, 부흥회가 끝나고 저녁 늦게 집에 오는데, 남편 정 씨는 술이 머리까지 차서 아내가 들어오자마자 뺨을 때렸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대 맞으면 말이라도 몇 마디 하고 그랬는데, 뺨을 한 대 딱 때리니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제가 늦게 와서 당신의 마음이 상했다면 이쪽 뺨 한 대 더 때리세요.”

이런 아내의 반응에 남편 정 씨가 더 놀래서 ”너 오늘 교회에 가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고, 아내는 교회에서 은혜받은 이야기를 쭉 했다. 남편 정 씨는 목사가 자신처럼 술주뱅이었다는 것이 이상해서 그 다음 날 따라갔다. 처음으로 교회에 갔는데, 뭔가 가슴이 뭉클뭉클하고 이상해서 그 다음 날 또 갔습니다.

마지막 날 김익두 목사는 이런 설교를 했다. “여러분!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이왕이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십시오. 복을 받기 위해서는 네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풀장수 정 씨는 “그래, 나도 밑바닥 인생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복이라는 걸 받아보자.” 그러고는 그 다음 주일부터 목사님이 얘기한 네 가지 비결대로 꼭 주일을 지켰고, 풀 파는 통 옆에 조그마한 상자를 만들어 놓고, 십일조 함을 만들어서 10원어치 팔면 1원을 넣으며 그날부터 십일조 생활을 했다.

새벽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목사님이 주일날 말씀을 증거하면, 토끼귀처럼 듣고, 생명 걸고 그 말씀을 지켰다. 어느 날, 약전골목에 술주정뱅이가 사람 되었다고 약전골목에서 장사하는 모든 이들이 칭찬을 했다. 세상에 저렇게 변할 수가 있냐고. 그러자 한약방을 하는 친구가 정 씨에게 이제 사람 되었으니까 약방을 해보라고 추천했고, 용기를 내어 친구한테 매일 배우고 또 배우며 길바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집에서 약을 지어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문이 나자 점점 장사가 잘되어서 이 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약전골목에서 제일 돈을 잘 버는 한약방 주인이 되었다.

다른 약국 주인들이 정 씨의 약국에 와서 “당신은 어떻게 약을 짓길래 우리 약을 먹으면 안 낫고, 당신의 약을 먹으면 낫는 거요?”라고 물었다. 그때 정 씨는 “당신들이 쓰지 않는 특별한 재료가 우리 약에는 들어갑니다. 바로 ‘기도’라는 재료가 들어간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대구서현교회를 시무하다가 천국에 가신 정규만 장로다. 그는 한국전쟁과 장티푸스,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힘들어하는 시민들을 정성껏 치료하여 많은 생명을 살려온 장본인이다.

무엇보다 그는 과거 1969년,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화강암 대리석 석조건물로 대구서현예배당을 준공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의사였던 정 장로는 예배당 건축의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전북 익산에서 10여 년에 걸쳐 화강암을 채석해 오는 정성을 기울였다. 예배당을 준공하던 해, 정작 건축 일등 공신이었던 그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규만 장로는 교회 사랑,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본을 믿음의 후손들에게 남긴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다. 정 장로는 1969년 6월 24일 오후 8시, 동성로 자택에서 향년 59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성도들의 얘기에 의하면, 마지막 순간에 정 장로가 오른손을 들고선 천사들이 영접하러 왔고 주님이 자기 손을 잡았다고 말했는데, 그 순간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빛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발인예배가 열리던 날, 서현교회당은 전국 각지에서 대거 참석한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평소 그를 존경하고 흠모하던 목회자들과 성도들과 일반인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장지인 구미 선산으로 가는 운구 행렬엔 성경 구절을 적은 수많은 만장과 운구를 따르는 승용차들과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대구가 생긴 이래로 가장 긴 장례행렬이었다고 한다. 지역신문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십일조로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어 예배당 헌당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웃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쳤던 정규만 장로의 모범된 신앙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도전이 크다. 근래 들어 십일조의 무용론을 주장하거나 십일조 한다고 복 받는다는 얘기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늘어감을 본다. 십일조는 율법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를 편다.

예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대속의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 죄인인 우리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까지 예수님이 대신 행하실 순 없다. 그건 우리 각자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일부를 감사로 표하는 것이다. 그건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해주실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십일조 한다고 다 우리가 바라는 복을 받는다’라거나 ‘복 받기 위해서 십일조 하라’고 가르치는 건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십일조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지키고 헌신하는 이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음을 부정해서도 안 됨에 유의해야 한다.

정규만 장로는 예수를 믿고 나서 김익두 목사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십일조를 철저히 해서 거부가 되게 하신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 물질로 그는 예배당 건축에 앞장서면서 이웃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많이 끼친 모범적 신앙의 인물이다. 그는 구미 지역의 대표교회인 구미상모교회 건축에도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이런 분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감동만 받고 도전받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분이 행한 일을 우리도 따라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십일조 정신’과 ‘헌신과 사랑의 정신’ 말이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