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지난 15일 충남도의회에서 통과됐다. 서울시의회도 같은 절차를 밟고 있어 제정된 이후 11년간 논란이 돼 온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지 주목된다. 그러나 각 시도의회가 폐지를 가결한다고 해도 해당 교육청이 재의 또는 무효소송까지 불사할 뜻을 밝히고 있어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까지는 앞으로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15일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44명 중 찬성 31명, 반대 13명으로 ‘조례’ 폐지안을 가결했다. 전국 7개 시도 중 처음이다. ‘충남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20년 7월 제정 당시부터 학생들의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특히 성적지향을 비롯해 임신과 출산 등에 대한 왜곡된 인권 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동안 줄곧 폐지를 주장해 온 충남 교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충남도의회에 이어 서울시의회도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다루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이 조례 폐지안은 올 2월에 학부모 단체가 중심이 된 주민 청구로 처음 발의돼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 수리로 한달 뒤 상임위원회인 교육위로 이관됐으나 처리를 두고 여야 갈등이 격화되면서 지금까지 심사가 보류돼왔다.
충남도의회와 서울시의회가 최근 들어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처리를 서두르게 된 건 올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 인권 보호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교사의 인권을 사각지대로 만들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교육부가 지난달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내놓으면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인 전국 시도의 폐지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됐다.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김혜영 시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 70명은 지난 7일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을 공동 발의했다. 따라서 서울시의회는 이미 수리된 조례 폐지 주민 청구안과 발의된 새 조례안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이 전체 의석수 112석 중에 약 68%인 76석을 차지하고 있어 폐지안이 상정되면 22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새 조례안이 변수다. 조례가 폐지되면 학생인권 보호라는 기본 취지가 흔들리게 된다는 일부의 우려를 의식해 조례를 없애기보다 일부 개정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학생인권조례’는 각 시도에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거대한 물결처럼 전국을 덮어버렸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광주·경기·전북·제주 등으로 퍼져나간 이 조례는 학생 인권 보호 차원에서 기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학생 인권을 모든 학교생활에서 최우선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 규정하면서 갖가지 문제점이 노출됐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상대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교권이다.
이런 문제점들은 사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별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지자 교육부가 조례가 내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충남도의회를 비롯 서울시의회 등 여당이 수적 우위에 있는 시도의회를 중심으로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점을 인권 보호 측면에서의 불균형과 상대적인 교권침해 요소에 다 담기엔 해악이 너무나 크다는 걸 정치권 모두가 간과하고 있다. 언론에서 이슈화하고 비판 여론이 비등한 건 그야말로 극히 일부의 문제점이다. 교권침해 문제가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가려진 문제가 그 못지않게 위중하고 심각하다는 뜻이다.
학부모 단체와 기독교계 반동성애 단체들이 특히 주목하는 건 동성애 관련 조항이다. 조례 제5조 1항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가족 형태’ 등이 열거된다. 제28조 1항엔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 8항엔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동성애를 보호하고 조장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계가 이 조례를 학교 내 ‘차별금지법’으로 여기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학교 또는 교사가 학생을 성별, 종교,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되고 학생에게 체벌 등 물리적 폭력을 가해서도 안 된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느 교사가 성별, 종교를 이유로 차별하고 그런 이유로 체벌을 가하겠는가. 너무나 당연해서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을 한 목적은 따로 있어 보인다. 바로 ‘성적지향’을 여기에 끼워 넣었다는 점이다.
각 시도의회가 본격적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를 시작하자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저항에 나서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뿐 아니라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까지 딴지를 걸고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중요한 본질은 외면하고 있다. 바로 자라나는 청소년기 학생에게 성적지향과 동성애를 주입하는 건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성적 방임과 방종을 인권으로 포장해 교육의 범주에 포함한 이들의 노림수는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궁극적인 목표와도 다르지 않다. 바로 ‘차별’ ‘혐오’를 반대한다는 명분의 ‘역차별’ 조장과 인권으로 포장한 동성애·젠더 이념의 저변 확산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이런 나쁜 인권을 막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걸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