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학회(회장 오광석)가 근대병원의 발전과 기독교의 관계 연구팀(건양대학교 산학협력단)과 공동으로 최근 서울 강북구 소재 한신대학교(총장 강성영) 서울캠퍼스에서 ‘교회사 속에 나타난 질병, 보건, 그리고 죽음이해’라는 주제로 제158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현채 박사(서울대의과대학 명예교수)가 ‘죽음은 소멸인가, 옮겨감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정 박사는 “죽음을 내포하고 있는 생명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은 인식에 이르게 되면,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고난과 역경을 이제까지와는 정반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며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모습의 어려운 상황과 여건들을 오히려 영적인 성장의 기회로 껴안게 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고 평범한 것에서도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이어 “죽음의 자리에서 종종 일어나는 중요한 영적인 현상인 근사체험과 삶의 종말 체험에 대한 이해는, 우리는 죽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영적인 존재라는 자각으로 이끈다”며 “나아가 영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과 영속성에 대한 인식은, 천둥과 번개의 실체를 파악한 뒤부터는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 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죽음을 마주치게 되는 날이 내일일지, 일 년 후일지, 아니면 십년 후일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닥칠지 모를 자신의 죽음에 대해 평소에 늘 성찰하고 준비해야 하는데도, 우리들 대부분은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정신없이 살아간다”며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 귀한 시간을 미워하고 싸우느라 허비할 수 없게 되고, 일 분 일 초를 의미 있게 쓰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무관심과 부정, 회피 그리고 혐오인 경우가 많다”며 “젊고 몸이 건강할 때,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이며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사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요즘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 아닌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변화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을 떠나는 가족의 마지막 삶을 가족 구성원이 옆에서 보살피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죽음을 손자와 손녀가 다 지켜보는 등, 죽음이 일상사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과학이 발달하고 유물론이 우세해지며 생명연장 의료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죽음을 터부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며 “의료진도 죽음을 삶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중요한 한 단계로 보지 않고,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되었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만을 주게 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환자의 가족이나 의료진이 매달리는 것도 이러한 가치관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 모두가 고귀한 영적 존재… 상호 연결성과 영속성 속에 삶과 죽음 바라봐야
정 박사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자신의 존재와 이를 받혀주던 모든 근거가 소멸한다는 데에 있다”며 “따라서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중요한 영적인 현상인 근사체험과 삶의 종말체험을 알려주는 것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없애 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어 “평소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 경우에도 임종이 가까워질 때 옆에 있는 누구든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란 사실을 임종자의 귀에 대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켜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20년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0대, 20대 그리고 30대 연령층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또한 노인 연령에서의 자살률도 OECD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 40·50대의 사망원인 2위도 자살”이라며 “가장 젊고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 나갈 연령대의 사망 원인 1-2위가 자살임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칠때까지 어느 누구도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말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이렇게 젊은 사람이나 노인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 심리의 바탕에는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어서 자살을 하더라도 어려운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또렷한 의식으로 그대로 가지고 가게 된다”고 했다.
또한 “육체가 있어야만 자살을 하게 만든 곤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볼 텐데, 자살로 육체가 없어져 버리면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어지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자살 예방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친밀했던 사람과 사별하고 나서 수년이 지났는데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과 관련한 영적인 현상을 알려주면 큰 위로가 된다”며 “육신은 흙으로 돌아갔어도 육체에 싸여 있던 영원불멸의 자아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상실감과 허무감으로부터 벗어날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박사는 “고생물학과 지질학을 전공한 과학자였던 프랑스의 샤르댕 신부(1881~1955년)는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다’라는 말을 남겼다”며 “직업의 고하나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고귀한 영적 존재”라고 했다.
아울러 “고귀한 영적 존재인 우리는 촘촘하게 짜인 그물의 씨줄과 날줄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상호 연결성과 영속성 속에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나를 비롯해 내 주변의 모든 존재를 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Dr. Candi Cann(Baylor University)이 ‘Understanding Disease, Health and Death in Church History’라는 주제의 강연이 진행됐다.
한편, 이날 분과별 발표도 진행됐다. 제1분과(주제연구)에서는 △남성현 박사(서울한영대)가 ‘인문주의자 비베스(J .L. Vives)의 빈자지원론(De Subventione Pauperum)이 16세기 초반 유럽의 빈민구제개혁에서 갖는 의의’ △이은재 박사(감신대)가 ‘(30년 전쟁과) 경건주의의 디아코니아 사역’ △공혜정 박사(건양대)가 ‘17세기 사무엘 풀러(Samuel Fuller, 1580-1633) 시대의 미국 의료와 종교’ △박창훈 박사(서울신대)가 ‘존 웨슬리의 저널과 의학저술에 나타난 의술활동과 18세기 영국의 병원’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으며, 제2분과(자유주제)에서는 △김선영 박사(실천신대)가 ‘하나님나라 입국 절차로서의 세례와 성찬: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의 「교리교육 강론」에 나오는 미스타고지를 중심으로’ △나현기 박사(한신대)가 ‘5~6세기 서로마 기독교 수도원 청빈(Monastic Poverty) 이해의 변화:
요안네스 카시아누스의 수도문헌과 베네딕투스의 「규칙서」를 중심으로’ △김일환 박사(서울장신대)가 ‘미군정기 조선신학교의 천리교 재산 임대 과정에 대한 재검토’ △박형신 박사(남서울대)가 ‘존 로스의 「예수셩교문답」 1885년 판본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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