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14:22b)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박해를 피해 이고니온으로, 또 이고니온에서도 핍박을 당해 루스드라로 옮겼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와서 무리를 충동”(19a)했고 그에 부화뇌동한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돌로 쳤다. 바울이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크게 위협을 준 것이 아니다. 정말로 죽도록 쳤고 실제로 죽은 줄 알고 시외의 한적한 곳에 내다버릴 정도였다.
초대교인들은 주로 유대인이었고 그들에게 최초로 박해를 가한 주역도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이라면 모세의 율법을 준행하고 전래되어온 여러 관습을 지켜야 함에도 신자들은 예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사도들의 가르침만 따르니 같은 유대인으로서 죽도록 미웠을 것이다. 구약율법은 다른 신이나 일월성신을 섬기는 자들은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다(신17:2-7). 바울은 예수 즉,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믿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심판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신약의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실제로 주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 로마 총독에게 정죄의 선포는 물론 꾸짖지도 않았다. 그럼 신구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분인가? 한 분이라면 신약 시대 이후로 생각을 바꿔 먹은 것인가?
물론 둘 다 아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계명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근본 뜻이었다. 당신의 백성을 사백년 간 노예로 부려먹은 애굽도 열 번이나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면서 인내하신 분이다.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살륙한 니느웨 사람들까지 사랑하신 여호와다.
그리고 모든 열방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을 택하고 그들의 역사에 간섭하여서 당신에 대해서 계시해 주었다. 당신의 온전한 권능과 사랑을 체험시켜서 모든 이방들에게 당신을 전할 제사장 나라로 세우려는 뜻이었다. 당신께서 이방들도 동일하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 제사장 나라인 유대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출애굽 같은 다른 민족이 겪지도 알지도 못하는 엄청난 권능과 사랑을 베푸신 이유도 이방신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그럼 우상 신을 믿기는커녕 알아볼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요컨대 이스라엘은 죽어도 우상을 숭배해선 안 되었고 그래서 율법이 그런 자들은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하신 것이다.
바울이 돌로 맞으면서 전혀 반항은 물론 항변조차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인가?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는 마당에 경건을 실현할 신령한 자는 없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들은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믿음은 성령이 간섭하여 예수 십자가 앞에 자신의 내면이 철저히 부서지기 전까지는 스스로는 결코 바꿀 수 없음을 자신의 체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흑암의 권세 아래 미혹되어서 예수님 사랑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 대속 구원의 은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또 이해하지 못하니까 본문의 유대인들처럼 신자를 핍박하기 마련이다. 본문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모르는 자들도 그 핍박에 동참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이 땅에서의 신자의 삶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로 십자가 복음으로 살고 있는 신자라면 반드시 이런 저런 모양의 환난을 필수적으로 겪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신자가 세상으로부터 핍박 받기를 원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지만 않으면 된다. 신자이면서도 신자 아닌 척 하며 살아가면 된다. 우리 모두 자신이 정말로 신자인가 아니면 신자인척 하는 신자인지 언제 어디서나 확실하게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2020/11/5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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