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역사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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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서울신대 명예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박명수 교수 ©장지동 기자

한국정치외교사에서 1953년 10월 1일에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미동맹은 개항이래 한민족이 가졌던 꿈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개항시기부터 한국인들은 우리의 영토에 욕심이 없으면서 다른 나라의 침략에서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으며, 더 나가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나라와 동맹을 맺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882년 조미조약은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은 한국문제에 빠져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 이후 한국은 미국과 연대하려고 했고, 미국은 여기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청일전쟁 때 고종은 미국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러일전쟁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3.1운동 때 우리민족은 미국에 도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을 외면했습니다. 심지어 해방 이후에 우리는 미국에게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려면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미국은 동북아의 복잡한 진흙탕에 빠져들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1949년 주한미군 철수는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3년 10월에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원해서 만든 조약이 아닙니다. 미국은 적당히 전쟁을 끝내기 원했고, 이승만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했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고 했고, 이승만은 이 전쟁을 통해서 북진통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 두 입장의 적절한 타협이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입니다. 미국은 전쟁은 끝냈지만 한반도에서 발을 빼지는 못했고, 이승만은 상호방위동맹을 맺었지만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이승만의 가장 큰 목표, 한반도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결국 이것을 통해서 남한에 세워진 대한민국은 지킬 수 있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지만 대한민국의 울타리를 제대로 만든 것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입니다.

사실 이것은 대한민국만 지킨 것이 아닙니다. 일본도 지킨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태평양과 자유세계를 지킨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1953년의 조약은 미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조약입니다.

1953년에 맺어진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는 대륙세력에 속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미동맹 이후 한반도는 대륙세력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해양세력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휴전선으로 대륙의 봉건주의와 공산주의와는 단절되었고, 해양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체와는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급격하게 서구문명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자유세계와 연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윤석열 정부만의 꿈이 아닙니다. 개항 이후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자유세계와 연대하기를 원했고, 그것이 열매를 맺은 것이 1953년 한미동맹입니다. 그리고 현 정부는 이런 정신을 계승하여 한미동맹을 단지 안보동맹에서 벗어나서 자유세계와의 다양한 연대를 추구하며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윤석열 정부의 방향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 오랫동안 우리와 연대했던 소위 대륙세력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매우 어려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개항 이후 가졌던 입장, 즉 한반도에 대해서 영토적인 위협을 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침략에서 우리와 연대할 수 있는 국가는 여전히 미국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유세계와의 연대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보다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입니다.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10월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 한 개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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