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로 인구 소멸 위기론이 대두된 우리나라의 현실이 ‘흑사병’이 강타한 중세유럽의 상황에 비견된다는 주장이 해외에서 제기됐다. 또 로마제국의 멸망과 비교하는 의견이 교계 안에서 나왔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댓은 지난 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은 ‘한국은 소멸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이 현재 출산율을 유지한다면 흑사병이 강타했던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큰 폭의 인구 감소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은 선진국들이 안고 있는 인구 감소 문제에서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다. 출산율 0.7명을 유지하는 국가는 한 세대의 인구 200명이 다음 세대에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라며 “이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가져온 인구 감소보다 더 빠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2일 성산생명윤리연구소가 창립 26주년을 기념해 연 세미나에서 전국입양가족연대 오창화 대표는 “과거 로마 멸망의 주요 원인이 저출산 때문이었다”라며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로마제국의 멸망에 비교했다. 그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대한민국 저출산 문제에 관한 교회와 성도의 역할’ 주제의 발제에서 “로마제국이 멸망을 앞뒀을 때의 인구는 전성기와 비교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라며 “(인구 감소로) 스스로 로마제국을 지킬 군사력도 없게 됐다”라고 로마 멸망의 원인을 설명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역사상 최악의 감염병인 ‘흑사병’에 빗댄 건 아무리 비유라도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로선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어 유럽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은 것과 한국이 겪고 있는 저출산 심각성을 같은 관점에서 놓고 비교했다는 자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우리의 인구 절벽 상황을 로마제국의 멸망에 비교한 것도 인구 격감이 초래할 위기를 경고하는 차원이지만 개운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그런 주장들이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9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나을 아기의 수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들을 과장이나 엄살로 여길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초저출생’의 여파가 곧 한국 사회 전반을 강타할 것으로 우려해 왔다. 그런데 그 충격이 곧이 아니라 당장 현실에 밀어닥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40만6243명이던 출생아 수는 그 이듬해 5만명 가까이 줄었다. 초등학교 입학생은 2004년 65만여 명이었는데, 20년 만에 40% 넘게 줄어든 것이다.
이 같은 급격한 인구 감소는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경제 활동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전반에 동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한국의 초저출생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30년 뒤엔 우리나라가 저성장을 넘어 역성장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례없는 인구 감소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안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군 병력 감소 문제를 지적한 건데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대인데 비해 북한이 두배가 넘는 1.8명이라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 한국군 병력은 50만명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으나 인구 감소와 18개월로 줄어든 복무기간으로 이대로 가면 50만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반면 북한군은 120만명에 달한다. 첨단 무기와 장비로 대체할 수 있다고는 하나 지상군 병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전쟁 억제력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국내외에서 잇따르고 있는 경고의 메시지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다른 나라라고 인구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단시일 내에 선진국에 진입한 거의 유일한 사례이기에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오늘의 성장을 이루게 된 건 국민의 근면과 성실에 뿌리내리고 있다. 배고프고 가난해도 자녀를 낳아 열심히 양육하고 가르친 게 오늘 성장 동력의 바탕이다. 그런데 그 성장 동력이 사그라들고 있다. 부모 세대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룬 성장 동력이 자녀 세대에 와서 끊기게 된 건 물질이 가져다준 풍요에 가치와 정신이 지배당한 탓이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가 특히 반성하고 회개할 부분이 있다. 기독교 시각에서 볼 때 한국교회 성도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보내고 그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 성장하면서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정부의 근시안적인 산아제한 정책과 입시 경쟁에 휘둘리며 기독교 공동체마저 복음의 길에서 스스로 이탈한 측면이 없지 않다.
또 하나는 생명 존중이 사라진 세태 풍조다. 2020년 4월 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에 대한 일말의 죄의식조차 사라지게 만들어 놓고 인구 소멸 위기를 말하는 건 모순이다. 태아의 생명을 해할 권한을 개인에게 부여한 국가와 사회가 ‘흑사병’과 로마제국 멸망에 비유된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생명의 번성을 기대할 순 없다. 한국교회와 성도들부터 정신 차려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