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혁신학회(회장 소기천 교수)가 2일 오전 부산 영도구 소재 고신대학교 코람데오허브홀·코람데오아트홀에서 ‘이근삼 박사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온·오프라인 동시에 진행됐다.
이날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가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 ▲이상규 박사(전 고신대 교수, 전 개혁신학회 회장, 현 백석대 석좌교수)가 ‘이근삼 박사의 생애와 신학’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이근삼 신학,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적합
김영한 박사는 “고신교단의 조직신학을 대변하는 신학의 거장 이근삼(1923~2007)은 부산의 고신대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사상은 한국 신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그런데 그분의 별세를 계기로 이근삼 전집 편찬위원회 구성되어 그분의 쓰신 원고를 정리하여 2007년12월~2008년1월 10권의 전집이 출간되어 그 분의 정통개혁신학 사상이 한국 신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근삼은 요한 칼빈과 박윤선, 한상동(1901~1976), 주남선(1888~1951), 한명동(1909~2001)을 위시한 모든 믿음의 선진들 반열에 서 있다”며 “박형룡, 박윤선, 한상동은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개혁신앙 선조(先祖)로서 개혁주의 정통신학과 신앙을 뿌리내리는데 기여한 인물”이라고 했다.
이어 “이근삼(1923~2007)은 박형룡 보다 26세 후학(後學)이요, 박윤선의 고신 제자로서 18세 후학이다. 그는 부산 서구 부용동 출신으로 고신교단의 진영에서 보수 정통신학을 지키는 신학적 거장으로서 부산 고신대학교에서 활동했다”며 “그는 석사학위 논문에서 케리그마신학의 원조인 불트만의 비신화론화 신학을 비판하고, 박사학위논문에서 신도종교의 국수적 민족주의 사상 그리고, 바르트의 신정통신학을 비판했다”고 했다.
또한 “이근삼은 신도주의(shindoism)에 대한 변증학 논문으로 화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학위(1962년)를 받음으로써 그의 스승 박윤선이 당시 열악한 환경(1953년 10월~1954년 3월, 5개월 유학) 속에서 이루지 못한 학문적 명예를 제자로서 성취하였고 화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며 “이러한 그의 신학적 노력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옥중생활을 하고 박해를 견디어낸 고신교단의 학문성과 개혁신학적 정통성 정립에 있어서 귀한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늘날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제4차산업혁명시대에 개혁교회는 오늘날 미래세대인 MZ세대를 위하여 개혁주의 문화신학을 가르치며 문화적 사명을 역설해야 한다. 이 세상에 있는 탁월한 인문, 사회, 자연 과학적 진리, 음악, 미술, 건축, 조각 등의 예술적 표현 등이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시대에 개혁신학은 단지 교의학으로서 교회 내의 신앙고백으로 머물지 않고, 문화신학으로서 4차산업혁명시대에 기독교 신앙과 사상의 시대적 적합성과 규범성을 드러내는데 귀중한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근삼은 개혁신학을 문화신학으로 정립함으로써 고신교단 신학을 교리 수호에만 집착하고 지성적 성찰과 학문적 교류, 시대적 소명을 소홀히 하는 근본주의 비난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역사적 개혁신학은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과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고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와 사회에 대한 문화적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근삼의 신학은 개혁주의적 문화신학의 이념을 카이퍼의 신칼빈주의로서 정립한 오늘날 4차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적합한 신학으로서 그의 탄생 백주년을 계기로 연구발표되고 계승 발전되어야 할 위대한 신학적 유산”이라고 했다.
◆ 이근삼 박사, 신행일치·학행일치의 모범 보여준 학자
이어서 강연한 이상규 박사는 “이근삼 박사는 박형룡(朴亨龍, 1897~1978), 박윤선(朴允善, 1905~1988), 이상근(李相根, 1911~2011)에 이어 고신의 제 2세대 조직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이눌서(William Reynold, 1867~1951), 구례인(John C. Crane, 1888~1964), 함일돈(Floyd E. Hamilton, 1890~1969)을 이어 박형룡과 박윤선의 신학을 계승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며 “찰스 하지는 개혁주의자(칼빈주의자)는 개혁주의적 인격의 소유자여야고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근삼 박사야 말로 신행일치(信行一致) 혹은 학행일치(學行一致)의 모범을 보여준 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박사는 “이근삼 교수는 단순하면서도 솔직했고, 정직하게 살았다”며 “은밀한 세계에 자신을 숨기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벌제위명(伐齊爲名)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했다.
이어 “이근삼 교수는 진정으로 고신교회와 학교를 사랑했던 학자였다”며 “고신 총회를 위해서도 봉사했는데, 교단 교회학교 계단공과 집필과 편찬, 교단 문서운동에도 기여했고, 고신이 승동측과 합동한 이후 환원하여 새롭게 출발할 때 총회기구 운영위원회에서 교단의 바른 행방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또 “총회표준문서연구위원회에서 일하면서 4년간 교단헌법을 정비했고, 총회 신학교육부와 고시부, 총회 섭외부 등에서 활동하면서 교단의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교단의 신학교육과 대외관계를 관장했다. 후에는 부산노회장으로 봉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이근삼 박사는 고신대학에서 여러 행정적인 책임을 감당했지만 특히 1979년 4월 고신대학 학장으로 선임되었을 때 고신대학 후원회를 조직하고 100만 원 후원자를 확보하는 운동을 전개했다”며 “당시로는 어느 대학도 기금 확보(fund raising)를 위해 노력하지 않던 때였다. 그가 학장 혹은 총장으로 교회나 기관에서 받는 사례를 학교경상비 통장에 입급했고, 영도 켐퍼스에 도서관을 건축한 이후에 자신이 평생 모은 값진 도서들을 대학에 기증했다”고 했다.
이어 “퇴임을 10년이나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은퇴 할 때는 장학기금으로 희사하기도 했다”며 “그는 학교의 장으로 있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는 학교재정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자기희생적인 지도자였다”고 했다.
또한 “그는 사심 없고 솔직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이자였고, 허세나 권위의식이 없었다”며 “그는 모든 일에 솔직하였다. 그는 자기 생각이나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민주적으로 처리했다. 자신이 한 일에 실수가 있었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1982년 3월 미 문화원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대학 육성을 위해 혼신의 열정을 쏟았으나, 사건의 책임을 지고 즉각적으로 사임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비정치적이었고, 정도(正道)와 정행(正行)의 본을 보여주신 칼빈주의 신학자였다. 찰스 하지의 지적처럼 칼빈주의자이자 칼빈주의적인 인격의 소유자였다”며 “그가 은퇴 2년 후인 1996년 10월 31일 고신대학교 경건회 설교에서, ‘개혁주의 세계교회 건설을 위해 건강이 허락하시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던 그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일생을 살았던 한국교회의 신학자였다”고 했다.
한편, 이어서 세션별 발표가 진행됐다. 제1세션에서는 △이승구 박사(합신대)가 ‘칼빈주의와 개혁신학 정착을 위한 이근삼 박사님의 기여’ △이경직 박사(백석대)가 ‘이근삼 박사의 신학서론과 신론’ △우병훈 박사(고신대)가 ‘이근삼 박사의 기독교 신앙고백’ △류길선 박사(총신대)가 ‘이근삼 박사의 개혁신학 연구: 교회의 성장과 세상의 변화라는 이중적 모토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으며, 제2세션에는 △소기천 박사(장신대)가 ‘신토의 변천사에 관한 연구’ △기동연 박사(고려신학대학원)가 ‘이근삼 박사의 하나님의 창조 이해’ △권호 박사(합신대)가 ‘설교학의 명료성과 연관성 관점에서의 이근삼 박사의 설교 분석’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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