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칭송받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불리게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누렸던 기쁨이었습니다. 다윗의 장막이라는 놀라운 예배의 유업을 우리에게 열어주고 물려준 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누렸던 즐거움이었습니다. 다윗 신앙의 정수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시편이 생명으로 가득한 이유입니다. 그의 신앙은 율법이 아니었고, ‘억지로’가 아니었습니다. 기쁨이고 즐거움이었습니다. 다윗의 기쁨과 즐거움은 주의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이었고, 주의 오른쪽에 있는 영원한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엇인가를 기도하고 선포할 때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선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입술에 권세가 있고,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믿음을 주시기에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고, 아직 불안하고, 아직 완성된 일이 아니고, 아직 완전한 평안 가운데 있지 않고, 여전히 의심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불안함이 있어도 입을 열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성준 – 황금시편
그가 67세일 때이다. 중부교회는 교인 전체의 찬성으로 교회통합이 결정되었다. 착잡해지는 심정은 가누기 어려웠다. 사명에 대한 중심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생계에 대한 염려가 목전에 닥쳤다. 막막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나이의 무게만큼 더해져서 엄습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의 고뇌는 교회의 틀어진 정체성에 관한 염려였다. 변질되는 믿음에 대한 우려가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5년 6개월 20일. 이 목회에서 정식 사표를 제출, 봉사하기 위한 교회이지, 봉사할 수 있는 요소가 되지 않을 때는 떠나가라. 하나님의 아들답게 비굴하지 말자’라는 것이 그해 마지막 날의 메모였다. 장민성은 1972년 신년인사를 겸한 고별사를 교인들에게 남겼다. “다 됐습니다! 선생님! 다 마쳤습니다!” 이발사는 장민성의 어깨를 감싼 가운을 거둬내며 이발이 끝났음을 말했다. 반응이 없다. 기척이 없자 이발사는 장민성을 가만히 흔들었다. “선생님! 이발 다 마쳤습니다!” 이발사가 어깨를 재차 흔드는 찰나, 장민성의 몸이 옆으로 쏠리며 기울어졌다. 임종이다. 아주 말끔하게 이발을 마친 상태로 그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장영은 – 디아스포라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오셨을 때 주님은 잎사귀를 원하시지 않았다. 말씀에서는 주님이 시장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무화과나무의 잎으로는 배고픔을 채울 수 없다. 주님은 한두 개라도 무화과 열매를 먹기를 원하셨다. 그렇듯이 그분은 우리에게서도 열매 얻기를 원하신다. 또 우리의 거룩함에 주려 계신다. 그분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기를,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늘 원하신다. 거듭남은 구원의 기초를 이루면서 천국을 향한 우리 소망의 토대가 된다. 건축물의 기초를 세울 때 주의 깊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듯이,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났는지 그리고 영원한 거듭남의 역사를 확실히 경험했는지 분명히 점검해야 한다. 실제로는 거듭나지 않았는데 자신이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사역자들이야말로 이러한 주제들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마음을 살피도록 힘써야 한다.
찰스 스펄전 – 예수가 인정한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