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성별 확정 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성별 정정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인데 아직은 입법을 위한 대표 발의를 예고한 수준임에도 벌써부터 반발과 논란이 일고 있다.
장 의원이 대표 발의하겠다고 한 이 법의 핵심은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과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법적 성별)을 일치시키기 위해 성별을 변경하는 것을 ‘성별의 법적 인정’이라고 정의하고, 법원이 성별 정정 신청자에게 성별 확정 수술을 포함한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지 않도록 규정한 데 있다. 또 혼인 여부나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성별 정체성에 따라 성별의 법적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절차에 있어서 당사자의 인권 존중과 차별 금지를 천명한 것인데 한마디로 ‘트렌스젠더’를 위한 법이라 해도 무방하다.
장 의원은 “지금껏 한국사회에서는 성별 정정을 희망하는 당사자의 의사가 존중되지 못했고, 엄격한 성별 정정 인정 기준 및 절차, 그리고 법원과 법관에 따라 (성별 정정 여부가) 달라지는 비일관성이 존재했다”며 트랜스젠더의 권익을 위한 입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 “젠더 이분법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혐오와 차별로 고통받는 트랜스젠더 시민들을 위해 21대 국회가 해내야 할 일이 바로 성별인정법안을 제정하는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원내 정당 모두가 더는 트랜스젠더 시민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이 법안 논의에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각급 법원은 대법원 예규인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근거해 성별 정정 신청을 한 사람에게 외부 성기 성형 수술 및 생식능력 제거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장 의원이 트렌스젠더를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주장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법원의 판단없이 간단히 성별 정정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트렌스젠더에겐 법원이 판단 근거로 요구하는 사항이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법원의 입장에선 이게 너무나 당연한 절차가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이든 주민등록상 성별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성별 정정의 근거를 제시하는 건 신청자의 당연한 의무지 법원의 무리한 요구라 할 수 없다. 성전환자나 이들을 옹호하는 측에선 이런 법원의 요구 때문에 원하지 않는 수술을 한다고 주장하는 데 과연 그게 법원 탓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장 의원의 입법 예고에 맞장구를 치는 언론도 있다. 일부 언론은 이 법에 따라 성별 정정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가정법원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서 등을 첨부해 서면으로 신청할 수 있게 되고, 성기 수술 등을 포함한 호르몬 등의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등 앞서나가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입법 예고에 불과한 장 의원의 발언을 마치 법이 제정된 것인 양 혼란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 들어 가장 먼저 ‘차별금지법’을 가장 처음 발의한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트렌스젠더’를 위한 법안 발의를 들고나온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법이 차별금지법의 ‘속편’쯤 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매번 성 소수자의 권익 문제가 마치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인 양, 그게 입법활동의 전부이자 궁극적인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건 생각해 볼 문제다. 이것이 민의이고 국회의원 신분에 합당한 행동이라면 여긴다면 커다란 착각이자 오산이다.
장 의원이 이런 발언을 한 지난 20일이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란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날은 1998년 증오범죄로 살해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장 의원이 이날 무지개행동 등 성소수자단체 회원들에 둘러싸여 ‘트렌스젠더’ 권익을 옹호하는 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건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장 의원 개인의 의지이지 이 법이 실제로 발의돼 통과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국회 안에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젠더’ 이념을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려는 사람들은 이런 법이 소수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보당 등은 지난 20일 발표한 논평에서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지금 당장 제정하라. 성별정정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정당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고 각기 내세우는 정강 정책이 있다. 그러니 주장하는 바가 국민 눈높이와 다르고 추구하는 색깔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아도 다양성 차원에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어느 정당 소속이든 국민의 대표다. 국민을 대신해 입법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신분의식을 망각해선 안 될 이유다.
법은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의 전유물일 수 없다. 공익이 전제되지 않는 법은 사회 규범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되레 무기가 되어 사회의 건전성을 해칠 뿐이다. 다수당이 국회에서 당리당략에 의해 힘으로 밀어붙여 양산한 법은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사회 혼란을 부추긴다. 그런 점에서 ‘악법’으로 불린다.
이런 악법의 소지가 가득한 ‘차별금지법’이 다수당 의원들의 잇단 발의에도 절차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기독교계의 반발에 막힌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국민 절대 다수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불과 다섯 달 남은 21대 국회가 민생문제 등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의제는 뒤로 미룬 채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법안 발의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