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전환 과정은 지난 세기 동안 아주 혹독하게, 이스라엘적일 뿐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성경의 창조 전통에서 개시되었다. 인간학도 그러한 변화를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이스라엘의 인간상은 이웃 문화권에서 차용된 것이 아니라, 고유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원리상 성경 인간학이나 성경에 전승된 인간상의 다양한 관점이 선포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의미심장한 큰 스펙트럼은 ‘레브’(leb, 심장)라는 말과 연결되어 있다. 남녀 이스라엘들은 신을 사람의 형상을 한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에 수치심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야웨도 사람처럼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심장은 사람의 사악함에 괴로워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심장은 후회나 노여움과 같은 격렬한 감정에 붙잡힐 때(호 11:8), 애정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
실비아 슈뢰어 & 토마스 슈타우블리 – 성경과 몸의 상징학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에게는 너무나 설득력 있는 메시지이다. 살인자의 말 한마디에 배교하는 극 중 캐릭터는 단 한 번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믿어 보기나 한 것일까?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눈과 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음속에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외침이 들려올 때, 이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성경은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믿을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수준에서 생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이시겠다’라고 약속하셨다. 노골적인 기독교 영화도 좋지만, 기독교적 가치를 담은 영화로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진행되는 영화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이제 세상이 인정할 만한 시대정신을 가진 감독이 나와야 할 때다. 전능자 하나님의 방식은 조금 조금씩 이루어 가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다윗과 같이 한번에 기름 부어 쓰시기도 하셨다.
손지형 – 한국 영화 속 감춰진 충격적 세계관
성경 해석사의 가장 이른 시기부터 지금까지 해석자들은 이 명백한 모순과 부조화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비평적 해석 이전의 해석자들은 본문의 단일성을 절대 의문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야기상의 문제들을 제거하거나 둘러대려고 노력했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는 비평적 성서학의 태동을 보았고, 19세기는 특별히 자료비평의 발전을 목도했다. 이로써 미드라쉬적 접근법들은 합성 저작 이론 선호와 함께 전반적으로 거부되었다. 이런 움직임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고, 이후 남은 지면을 통하여 자세히 알아볼 부분이다. 그러나 이 비평의 시대에도 다양한 관점에서 글을 쓰는 많은 학자가 비평적 방법론 이전과 동일한 주장을 차용하여 계속해서 본문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조엘 S. 베이든 – 오경의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