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9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로잔운동의 약화를 우려하는 선교 신학자의 견해가 주목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영남신학대 안승오 교수로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로잔이 총체적 선교(Integral Mission)를 추구하면서 복음의 우선성을 상실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논문이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소위 ‘총체적 선교’가 복음화의 약화, 선교 개념의 혼동, 그리고 로잔운동 자체의 약화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우려한 부분이다. 특히 이 논문을 제4차 로잔대회 한국준비위가 소개했다는 점에서 내년 대회는 물론 향후 로잔대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안 교수가 지적한 ‘총체적 선교’란 2000년대 들어 로잔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용어로 선교에 있어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총체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견지하면서도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같은 위치에 두는 의미인데 그간의 복음적 로잔운동에 있어 일종의 방향 전환으로 지적돼 온 부분이다.
로잔이 채택한 ‘총체적 선교’는 복음 진영으로부터 그 개념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용어의 태동 배경에서 에큐메니칼 진영의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와 사실상 크게 차이점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안 교수가 논문에서 “총체적 선교가 ‘통전적 선교’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통전적 선교’ 개념의 영향으로 ‘총체적 선교’가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전적 선교’는 제5차 세계교회협의회(WCC) 나이로비 총회에서 처음 제시됐다. 당시 총회에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이 선교의 개념을 두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그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 개념이 바로 ‘통전적 선교’다. 문자 그대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통합적 관계를 이룬다는 의미가 내포됐다.
안 교수는 이런 에큐메니칼 진영의 ‘통전적 선교 개념’이 로잔 진영 내 일부 급진적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결국 로잔의 선교 개념에까지 파고들게 되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로잔운동이 점차 ‘복음전도의 우선성’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동등하게 보는 방향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사실 로잔언약이 복음 전도에서 사회 참여로 이동한 건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건 아니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던 제1차 로잔대회 ‘로잔언약’에서 언급됐기 때문이다. 이 로잔언약 제5항에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등장한다. 즉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확언한다”라는 내용이다.
물론 그 앞에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복음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라는 전제가 달려 있다. 하지만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를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의무사항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로잔언약이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말하면서도 ‘총체적 선교’의 물꼬를 터놓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로잔운동이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견지하면서도 전도의 우선성보다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총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한 건 시대적인 변화에 순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로잔운동의 방향성 변화가 복음 전도의 약화로 이어지면서 로잔의 정체성까지 흐려지게 된 건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란 지적이 많다.
내년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선교 신학자와 로잔운동가 사이에서까지 기대보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자주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차바아 선교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로잔교수회 출신 이동주 박사는 “로잔대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는 말로 로잔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했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 등 복음주의 노선으로 출발한 로잔대회가 동성애와 성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뒤덮고 있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는 것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한국 로잔대회가 본래의 로잔 정신을 회복해 성경의 완전 무오성, 복음의 선명성을 회복하고 ‘차별금지법’에 대해 분명히 “NO”라고 선언하는 대회가 되길 희망했다.
로잔운동의 최근 흐름에 복음주의 진영의 우려가 깊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로잔이 변질됐다고 단정할 수 있을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그동안 로잔운동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 복음적 헌신 대신 세속적인 이데올로기에 섞여 방향성과 정체성이 흐트러지고 있다면 이는 분명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로잔의 ‘총체적 선교’가 에큐메니칼 진영이 채택한 ‘통전적 선교’의 닮은꼴이어서가 아니라 복음 전도를 최우선 목표로 달려온 로잔 정신의 방황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더 걱정스럽다는 말이다.
‘세계복음화’는 지난 45년간 로잔에서 한번도 변하지 않은 핵심 과제이자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로잔이 지금의 기조대로 간다면 이 과제를 조만간 포기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내년 9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가 과연 복음진영의 바람대로 로잔정신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