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 하나님이 공동선의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공동선은 성경의 바탕을 이룬다. 따라서 공동선의 렌즈로 성경을 살피면, 성경의 진의를 더 잘 깨닫고 그 진의를 삶에 적용하는 영적 안목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공동선이 근본주의, 번영주의, 개인주의에 깊이 매몰되어 있는 우리 각 사람에게 공동체적으로 함께 살아감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송용원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성경과 공동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본 도서를 집필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하나님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습니다. 구름은 노아 이후에도 그치지 않는 인간의 죄와 허물, 그로 인해 겪어야 할 고난과 역경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구름 속에 무지개가 보인다는 것은 구름을 통과하는 햇빛이 있음을 말합니다. 구름이 햇빛을 만나 합력하여 동행하니 무지개가 나옵니다. 홍수 이후에도 세상은 흠이 많겠지만, 그럴수록 은혜가 더욱 파고들 거라는 약속의 징표가 ‘무지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주시려고 우리 머리 위로 온갖 구름을 모으십니다. 바울은 이 고난의 신비를 알아차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러고 보면 너에게 좋았던 그래서 내게도 좋았던, 무엇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공동선의 모든 순간은 구름 한 점 없이 찬란하고 눈부신 날이 아니라, 오히려 구름이 잔뜩 드리운 우리의 잿빛 일상에 찾아온 고마운 손님 같습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은 들여다볼수록 ‘나와 너’의 관계의 세계와 ‘나와 그것’의 경험의 세계의 끝없는 대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험 세계의 극치인 도시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은 일생 관계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영원한 ‘너’이신 하나님의 옷자락을 바라보기도 하고 나부낌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때로 바로나 아비멜렉 등 상대를 ‘그대’가 아닌 ‘그것’으로 대하는 연약함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을 ‘그대’로 만나는 나름의 사연을 좇아 영원한 ‘그대’이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반면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잠시 관계의 세계에 머물다가, 그만 상대를 ‘그것’으로 간주하는 경험의 세계로 훌쩍 떠나고 맙니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관계의 세계를 떠나버린 나는 아무리 다채로운 인생 경험을 하더라도 결국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나다운 나’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영적 현실입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주님은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모두 거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잇고, 영원과 시간 사이를 잇는 유일무이한 ‘중재자’(mediator)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되게 하는 데 아무 제한이 없으시다면, 하물며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아 서로 하나 되게 하는 데 무슨 걸림이 있으실까요. 예수는 어떤 종류의 사이라도 중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과 인간 사이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좋게 하여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만드는 ‘인터페이스’(interface) 역할을 하십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얼굴 안에서만 그리고 예수의 얼굴을 통해서만 모두 자기의 얼굴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중심성과 갈릴리라는 주변성 사이에서 공생애를 살아 내며 온 세상을 향해 개방된 하나님 나라를 여는 새 창조의 선구자가 되신 그리스도는 한계와 경계 위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길과 진리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