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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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채 목사(케냐 멜빈대학교 총장)
서병채 총장

“그림자도 빛처럼 중요하다.” 소설 ‘제인 에어’에 나오는 대목이다. 남녀 이야기인데 누구나 다 인생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있다는 얘기였다. 둘 다 중요하다고 본다.

임상 목회 훈련에서는 grey area라는 용어를 쓰는데, 뭔가 남에게는 숨기고 싶은 과거의 경험, 실수, 잘못, 불행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음을 그 훈련받을 때 동료들로부터도 알게 되었다. 그 훈련받는 동안 도중에 관둔 학생도 있었는데 이런 grey area를 오픈하고 그것에 대한 동료들의 시선에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만큼 인생의 검은 그림자 시절은 감추고 싶은 것이다.

‘제인 에어’의 소설에서는 인생의 밝은 면 만큼이나 어두운 면도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 밝은 색도 넣지만 그림자는 어두운 색으로 칠해지는 것과 같다. 출세하여 성공한 이면에는 어두운 시절도 있었을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밝은 색의 성공에는 겸손하게 감사하고 또 어두운 색의 힘든 시절에 대해서 그것도 필요한 과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면 좋겠다. 마치 음양이 존재하듯이 우리의 삶도 그런 평범한 진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 듯하다.

문제는 그 어두운 시절을 지금은 어떡할 것인가이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그것도 한 과정이었다면 그렇게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자랑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나 같은 경우도 그런 시절이 몇 개 있었는데 한 가지 예를 들면 나가랜드 신학교 설립 시에 약속했던 한 지인이 사업이 어려워서 선교비를 못 보낸다고 연락이 와서 나는 아주 난감했다. 한국에서 약속하고 거기에 신학교를 건물임대로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고 또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책임져야겠다 하고 신문을 보고 일반 사회직장에 뛰어들었다. 교회들에 부탁하면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여 소위 3D 직종에 뛰어들었다. 그 일이 어떤 것이고 또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뛰어든 것이다. 그것이 4년 동안 그 일을 하게 되어서 나가랜드 신학교에 땅을 사는데 다 보냈다. 가족 외에는 내가 그런 일 하는지를 아무도 모르게 입단속을 시켰다. 사람들이 알면 당연히 “목사가 기도나 하지 그런 일 하면서 돈 번다”(?) 라고 나무랄 것이다. 결국은 동료 목회자들이 알게 되긴 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나가랜드와의 약속은 지켰다.

하루는 형이 하는 말, “네 인생에서 없었던 기간으로 생각하라”라는 제안이었다. 하긴 그렇기도 하다. 너무 그것에 괘념치 말라는 얘기 같다. 어쩌면 누구나 다 한 두 번은 겪는 과정인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도 나중에야 자녀에게 얘기해주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얘기해주면 들어주면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구태여 자꾸 꼬집어서 들추어내려는 경향도 있긴 하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요 결점인 것 같다. 상대방이 얘기하기 싫어하는 것을 자꾸만 물어오면 사실 난감하기도 하다. 여기 아프리카는 더더욱 다른 측면에서 그런 어두운 시절이 많은 것 같다. 가난하고 힘든 곳이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고, 어쩌면 그것은 당사자들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 학생들의 고통과 아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 감지는 하고 있지만 구태여 물어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런 경험과 상황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공감해주면 될 것이다.

#서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