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짓밟힌 황홀함

김병태 목사   ©시애틀 성천교회

오늘 무더운 날씨 속에 늦깎이 신랑 신부를 주례해서 새 출발을 시켰다. 많은 하객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예식장이 아닌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이라 더 좋았다. 도떼기시장 같은 결혼식 분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분주함도 피할 수 있었다. 하객들도 질서와 예의를 지켜주었다.

나는 늦은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가 행복한 동행을 하길 바라며 주례사를 했다. 결혼을 한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고. 행복한 동행을 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실천하는 믿음'으로 서로 섬기는 부부가 되라고. 권리와 특권만 주장하지 말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아내는 어떤 경우에든 남편을 인정해주고 존경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이 약속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언약사건이라고. 뿐만 아니라 친밀한 사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가라고.

친밀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함께 하라고. 서로 대화를 나누라고. 어떤 경우에도 신뢰를 만들어주고, 신뢰해야 한다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지금과 같은 설레는 심정으로 살아가라고.

10년 후, 30년 후에 두 손을 꼬옥 잡고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특히 신부는 엄마 없이 자라지 않았는가? 아버지가 술도 좋아하셔서 불편할 때가, 아니 상처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주례를 서는 목사의 마음은 더 짠했다. 그래서 더 간절한 마음이다. 오래 오래 행복하기를.

주례를 마친 나는 신랑 신부 앞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처럼 늘 행복하게 살아가세요. 오늘의 이 설렘을 잃지 마세요.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추억을 담은 신혼여행을 다녀오세요."

그런데 우린 잘 알고 있다. 행복한 동행을 그렇게 꿈꿨지만 많은 부부들이 불행한 동행을 하고 있음을. 천국의 모델 하우스를 만들고 싶었지만, 지옥의 모델 하우스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서울에 있는 어느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에서 한 여성이 죽은 채 발견됐다. 여성의 이마와 다리에는 유리병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집안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시신이 발견되기 닷새 전이었다. 숨진 여성의 남편이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집에서는 아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피장파장이 아닌가? 그런데 술을 마시고 있는 아내를 본 순간, 남편은 머리가 돌았다. "여자가 집구석에서 살림은 하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냐?"

남편은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2미터 거리에서 아내의 머리를 향해 소주병을 던졌다. 그것도 두 차례씩이나. 폭행을 당한 아내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아내가 다치자 남편은 119에 신고를 해서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만취된 아내는 치료를 거부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내를 그대로 방치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아내 옆에서 술만 마셨다. 아내를 방치한지 나흘 만에 결국 죽고 말았다. 아내가 죽은 줄 알았지만, 남편은 다음 날에야 119에 신고했다.

이들 부부는 알코올중독자였다. 5년 전, 이들은 알콜중독 치료병원에서 만나 재혼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술을 끊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가족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결국 인생을 허무하게 종지부 찍었다.

결혼에 대한 황홀한 기대가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은 아름다운 소망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이러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난, 늘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처럼 살아갔으면 좋겠다."

"성도들이 우리 부부, 우리 가정을 모델로 삼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아이들 앞에서, 성도들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려고 애쓴다. 멋진 인생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잘 산 인생이고 싶다.

되돌아보면 기대가 많았다. 원하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결혼은 핑크빛 환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선교사의 심정으로 산단다. 불행한 일이다. 결혼이 선교지라니. 전쟁터라니.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면 지옥에서 사는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가지치기도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포기도 해야 한다.

어디 그 뿐인가? 행복한 동행을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 헌신도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하다. 안될 게 뭔가? 싸우지 않고 사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가? 웃으며 사는 게 뭐 그리 어려운가? 행복의 파랑새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은데.

주일에는 가정사역부 주관으로 '행복한 가정 만들기 세미나'가 있다. 오후 찬양예배 후에. 자원하는 성도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주제는 '대화'이다. 막힌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대화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대화 훈련을 통해 모든 부부들이, 모든 가정들이 행복한 동행을 출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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