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결혼을 이성간의 연합으로 규정한 결혼 보호에 관한 연방법이 "정당한 절차와 동등하게 보호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결혼보호법에는 배우자를 "성이 다른 남편과 아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법적인 연합"이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이 판결은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보장한 것은 아니지만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연방 대법원의 결정을 '동성결혼의 승리'라고 자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동성결혼 지지자들로부터도 크게 지지를 받고 있으며, 자국에서도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이 결정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기독교계는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전의 공립학교에서 동성애를 포함한 성 평등을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캘리포니아의 결정에 반발해 온 기독교는 동성결혼에 관한 문제에서 더 큰 벽에 직면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의 인권문제의 성숙과 더불어 동성애의 문제는 매번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히 동성애자의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인권의 측면에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미국에서는 동성애 문제는 단지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낙태, 양심과 종교의 자유, 소수 민족 차별금지 등과 함께 연결된 문제가 된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주제들이 별개의 문제로 인식되기를 원하지만, 사회법에서는 이런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한 가지 범주에서 같이 다룬다는 것이 더 큰 어려움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전쟁인 Cold War가 20세기로 막을 내렸다면, 21세기는 동성, 이성, 양성, 그리고 어떤 성의 범주에도 포함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인권의 필드에서 벌이는 Gender War의 서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현대사회의 진보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는 동성애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세상으로부터 반인권적인 집단으로 보여지기까지 한다. 하나님 사랑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제일 큰 계명으로 여기는 기독교가 이렇게 여겨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기독교는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입장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문제를 대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흔한 오해는 '톨레랑스'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톨레랑스는 무조건적인 이해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톨레랑스의 본 뜻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논쟁은 하되 그것을 물리적인 폭력에 의지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말이다.
동성결혼의 문제가 동성애자에게 주장되는 권리인 만큼 기독교의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도 역시 톨레랑스 안에서 엄연한 권리인 것이다. 이것은 분열도 아니고 인권의 후퇴로 인식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 주장을 물리적 폭력에 의지 하지 않는 한, 동성애자들로부터도 그들의 권리만큼이나 동등하게 존중 받을 권리로 인정받아야 한다. 기독교는 성경에 입각해서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살해의 위협받거나 동등한 사람으로서 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 당하는 것도 반대한다.
동성애의 문제는 인류 역사가 막을 내릴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기독교와 동성애자는 적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의 파트너로 서게 될 것이다. 논쟁한다고 다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동성애자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반대할 권리를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