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근원, 제사장 나라
창 12:2~3, 계 1:6
Ⅰ. 우리가 받은 축복에 대한 벅찬 감사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은혜의 구름 기둥, 진리의 불기둥’으로 친히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가일층 작금의 시대에 매우 의미 있는 단체들인 WFP(유엔세계식량계획)나 UNHCR(유엔난민기구) 같은 세계적 기구들이 서울을 아시아의 대표지부로 삼을 정도로 세계 중심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모든 축복은 무엇보다도 다방면에 걸쳐 근대 조국의 문명화에 기여한 기독교의 역할과 그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나라 근대화의 발전은 기독교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 진지하게 되물어 봅니다. 첫째, 근대교육의 진정한 효시가 누구입니까? 둘째, 자유의 가치를 고수해온 참된 주체가 누구입니까? 셋째,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한 선두 주자가 누구입니까? 이 땅의 기독교 선각자들이요, 바로 한국교회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조국의 역사에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것도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것도, 무엇보다도 지난 70년간 휴전선이 뚫리지 않고 전쟁이 없었던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고 은혜였습니다. 물론 이 땅의 사회 각 분야의 인재들이 흘린 땀과 바친 희생을 간과하기 어렵겠지만, 매일 새벽마다 100만 명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올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금향로를 보시고 주님께서 응답하여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하면 인구도 적고, 러시아에 비하면 땅도 작으며, 또 일본에 비하면 경제력도 약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를 말하고, 한국 기독교의 영성을 논하면 이런 세계적인 강국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강합니다. 조정 경기를 할 때 키잡이(cox)가 비록 체구는 작지만, 건장한 조수들을 지휘하여 목적지까지 끌고 가듯이, 영적 강국인 우리나라가 이제 문화강국, 스포츠 강국으로서 세계를 견인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콕스(cox) 역할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이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은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축복 뒷면에 참으로 안타깝고 처절한 현실이 있습니다.
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처절한 현실
목하 우리나라에 물리적인 전쟁은 없었지만, 현실은 이념, 계층, 심지어 성별 간의 심각한 갈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극심한 갈등은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자기 진영 밖의 사람들을 적으로 여기는 내전 같은 상태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분노가 일상화되었고, 우리 사회는 파괴적 갈등이 고착화되는 가슴 아픈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타락한 인간이 지닌 교만과 욕심 때문입니다. 가장 큰 교만은 자기 진영 밖의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도 명료하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확성기처럼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여기는 Self-ism, Me-ism, 그리고 지나친 진영논리는 점점 같은 사회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을 어렵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객관성과 양심의 기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걱정할 정도로 세계 최하위 출산율과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전쟁의 위험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실제적인 위협이요, 온 국민의 근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처절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우리가 부족함에도 다시 일어나 뻗어나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 이웃과 사회를 살리고 또 우리 민족을 살리는 은총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Ⅲ. 이 민족을 살리는 영적 강국의 길
성경은 항상 시대적인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지자적 책망’과 ‘제사장적 책임’이라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오늘의 처절한 현실에 대한 도전이 선지자적 책망이라면, 우리 사회에 잠재된 분노를 해소하고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며 그들이 진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것이 제사장적 책임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향과 목표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마귀에게 속지 말고, 하나님 안에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의 자녀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고, 진리의 빛이 어두움을 찢어버리고 지배합니다. 이것이 우리와 우리나라를 축복으로 이끄는 비결입니다.
어떻게 마귀를 대적하고 진리의 빛 가운데 머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인 창세기 12장 2~3절이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되어서 하나님과 모든 족속 사이의 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 너 혼자 잘 먹고 잘살아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남들을 복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상처많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축복의 근원의 출애굽적 재해석이 ‘제사장 나라’입니다(출 19:6). 제사장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닙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세상 모든 민족, 나라, 사람들에게 복을 유통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광야의 길을 지나게 하셨듯이, 우리 민족의 처절한 현실의 광야를 극복케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하셔서 그 성전을 땅의 모든 족속들이 은혜 받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이 친히 우주적 성전이 되셔서 그분앞에 나오는 모든 자마다, 구원받고 생수가 터지게 하셨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제사장직은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쟁취해서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다음은 우리 사회와 열방의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질문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제사장적 사명을 잘 감당할까?’ 이를 위한 우리의 실천과제입니다.
1. 축복의 플랫폼으로 사는 사명자가 됩시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고려나 조선은 불교와 유교 사상의 영향이 컸지만, 대한민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건국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특별한 축복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 자본, 기도 자본, 헌신 자본, 고난 자본’입니다. 이러한 축복은 우리 민족만 영적으로 배부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계교회를 위한 ‘축복의 플랫폼’이 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화요일에는 7,000여 명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하늘 문을 여는 기도, 천장을 울리는 기도를 목 놓아 부르짖었습니다. 이 모두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 이 민족을 복되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허락하신 귀한 생명 자본들 터 위에 이 민족이 든든히 세워져 감으로 우리 사회에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진영논리를 복음적 진리로 압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오늘 말씀처럼, 우리 민족이 영적 강국이 되어서 우리만 형통한 것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 제사장 나라가 되어 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 글로벌 플랫폼을 뛰어넘어 ‘축복의 플랫폼, 신적 공유지(Divine Commons)’로서의 역할을 넉넉히 감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2023-50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는 사명자가 됩시다.
앞으로 10년 후인 2033년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2,0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한국교회에 부흥의 은혜를 주셔서 80년대 폭발적으로 부흥할 때, 우리는 ‘이러다 전국 복음화율이 50%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통로가 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소홀히 함으로 이런 축복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믿음의 눈을 들어, 1세기 교회의 야성과 전투력을 회복하여, ‘2033-50’, 2033년에는 한국의 복음화율이 50%가 되는 은혜 주시기를 우리 모두는 꿈꿔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길 축복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비전을 이야기하면, ‘이게 되겠나?’라며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초라한 갈릴리 어부 출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대위임명령을 하셨을 때 당시 제자들의 형편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열악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당대의 세상을 이겼고, 바울이 전한 복음 앞에 에베소가 문을 열고, 빌립보가 항복하고, 대로마제국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당시의 제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은 이 시대의 제자들인 우리들에게도 유효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학개서 1장에서 사명을 감당하지 않은 이들에게 내리신 징벌, “구멍 뚫어진 전대”(학 1:6)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함으로, 세계교회를 위한, ‘은혜의 저수지, 사역의 병참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쉬운 말로, 세계교회를 위한 ‘영적 곳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서구교회에 진 복음의 빚, 100년 빚진 것을 향후 100년 동안 갚기를 원합니다. 경제원조 수혜국에서 경제원조 시혜국이 되도록 반전의 역사를 주신 것처럼, 선교와 은혜의 수혜국에서 시혜국이 되길 꿈꾸어 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열방 가운데 거센 파도처럼 출렁거리기를 소원합니다.
Soli Deo Gloria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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