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동성애는 2000년간 종교적 죄 또는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서구사회의 의학 엘리트들은 동성애를 병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성애를 뇌의 병으로 그다음에는 일종 심인성(心因性) 노이로제로 보고 정신분석적 전환치료가 시행되었다. 그리하여 1952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처음으로 정신장애 진단통계 편람 제1판(소위 DSM-I)을 만들 때, 동성애는 “사회병질적 인격장애”(sociopathic personality disturbance)로 분류되었다. 1968년 개정된 제2판(DSM-II)에서는 성도착(sexual deviation)의 하나로 분류되었다.
50년대 이후 미국인들은 “notorious”한 빌헬름 라이히가 오르가즘을 증진하는 선동을 하는 것을 흥미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바렐라》(1968)라는 영화가 라이히의 주장을 풍자하는 영화였다) 이어 등장한 킨제이 보고서는 많은 미국인들의 혼전 성행위와 불륜을 폭로(?)하였다. 60년대 마스터즈와 존슨이 “인간의 성반응”을 실험적으로 연구하여 성적 쾌락을 얻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었다. 또한 5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가족계획(planned parenthood)-피임법, “성공적 성행위”에 대한 가이드북, 포르노 산업 등등 프리섹스를 조장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피임약, 피임도구, 성병치료약(페니실린)이 등장하였다.
이런 흐름에 따라 1960년대 서구에서 “성혁명”이 일어났다. 이 혁명은 성적 억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회-문화적 운동이다. 즉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운동이다. 진보적인 작가와 예술가, 그리고 플레이보이지의 휴 헤프너 같은 성문화의 엘리트들이 등장하여 성적 지유-프리섹스를 선전 선동하였다. 그들은 휴마니즘(인본주의)과 인권 차원에서 이제 모든 인간은, 남녀 구분, 이성애적 결혼, 일부일처제 등등 “전통 기독교” 교훈의 “억압”에서 벗어나, 성적 자유(프리섹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특히 소아와 청소년도 성적 인권을 누려야 한다고 하면서 소아성애의 정상화의 길을 열었다. 급진주의자들은 집단섹스, 부부교환, 동성애, 소아성애, 근친간, 수간, 사도마조히즘 등등, 과거 성도착증이라 불리우던 온갖 성행위들도 프리섹스에 포함될 수 있다 하였다. 이를 다자섹스(polyamori)라 한다.
한편 사회 전반에서는 “해방” 또는 “인권” 운동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었다. 흑인인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노동자운동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68학생혁명, 반전운동, 반권위주의 운동, 반문화운동, 히피문화, 롴음악, 마약에 의한 싸이키델리즘(psychedelism) 등이 유행하였다. 그 배경에는 사상적으로 네오막시즘(문화막시즘, Freudo-Marxism 등등), 후기구조주의(해체주의), 급진 페미니즘 등, 권위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사상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때 게이인권운동(gay right movement)도 시작되었다.
이미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직후, 레닌이 동성애 허용을 포함하여, 성혁명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혼, 성병, 낙태, 고아와 사생아 증가 등등 부작용이 심각하여 30년대에 스탈린이 이를 중단시켰다. 서구에서는 1920년대 서유럽 대도시에서 캬바레와 재즈를 중심으로 한 “프리섹스” 문화가 번창하였는데, 이를 “1차 성혁명”이라 한다. 이는 대공황으로 주춤해 졌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자유연애”라 불렀다.
60년대 서구의 성혁명은 “2차 성혁명”이라 부른다. 2차 성혁명은 70년대까지 절정을 향해 갔다. 프리섹스문화는 1980년 에이즈가 출현함에 따라 주춤해 졌다. 한편 프리섹스 문화는 소위 “헐리우드” 문화를 통해 아시아와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뮤지컬 영화 《그리즈》(1978)가 이때 청소년 성문화를 낙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그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과 부부유별의 전통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지금 서구에서는 더 “진보”하여 프리섹스를 넘어 인터넷 포르노와 마약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래에는 비인간적 섹스, 즉 마약-섹스, 로봇섹스, 가상현실 섹스 등등도 다자섹스에 포함될 것이다. 이는 결국 가족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다. 인구감소는 필연적으로 보인다. 성혁명은 성적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것인데, 그 유토피아는 “불임의 유토피아”(sterile utopia)일 것이다. 이런 성문화의 혁명기에 게이인권운동도 편승하였다.
한편 50년대 냉전시대에 매카시 상원의원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한다고 하면서 동성애자들도 억압하였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게이바들은 빈번하게 경찰들의 습격을 받았다.
1956년 UCLA의 임상심리학자 Evelyn Hooker(1907–1996)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정신상태가 다르지 않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즉 남자 동성애자 30명과 남자 이성애자 30명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하고, 그 결과 두 집단간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곧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즉 연구대상이었던 동성애자들이 뉴욕의 한 동성애자 클럽에서 추천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상 선택에서의 오류”가 지적되었다. 또한 사용된 검사도구는 주제 통각검사(TAT), 로르샤흐검사, Make a Picture Story test 등 3가지 투사검사법으로, 이들은 피검사자가 의도적으로 거짓 응답을 할 수 있는 검사들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논문은 60년대에 게이운동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지금 후커는 동성애자 공동체에서는 영웅으로 존중받고 있다.
한편 사회 전반의 반권위주의 운동에 반정신의학(反精神醫學)운동(anti-psychiatry movement)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정신과의사나 정신병원이 정신장애자를 강제입원시키고 강제로 치료한다는 등 인권을 억압한다는 비판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는 새》 같은 소설(1962)과 영화(1975)가 당시의 반정신의학 내지 반권위중의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미셀 푸코의 1961년 저술 《광기의 역사》도 같은 반정신의학적 비판철학을 주장하고 있다. (푸코는 알려진 동성애자였으며, 에이즈로 죽었는데, 사후 그가 소아 동성 성애자였음도 폭로되었다.) 그런데 지적할 것은, 원래 반정신의학적 철학은 정신의학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18세기 계몽시대의 정신과의사 Phillip Pinel에 의해 인도주의 정신의학이 시작되었고, 20세기의 초의 Clifford W. Beers, 20세기 후반의 Thomas Szasz, R. D. Laing, Silvano Arieti 같은 수많은 정신과의사들에 의해 주도-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반정신의학에서 주장하는 윤리적 정신은 현재 정신의학의 표준적 임상지침에 잘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60년대 게이운동가들은 정신과의사들이 동성애자를 멋대로 정신병으로 진단하고, 병원에 “감금”하고, 전기충격치료, 혐오치료, 뇌엽절제술(lobotomy), 성호르몬에 의한 거세, 등등 비인도주의적 치료를 강제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치료는 지금도 “치료 저항” 정신장애의 치료에 대안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의학적 윤리 표준에 따르고 또한 “설명후 허락”을 받으면 인권유린이라 할 수 없다.)
1970년 동성애자들은 인권 차원에서 존중받기 위해서는 동성애가 범죄는 물론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정을 받아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학술적 근거로 킨제이 보고서와 후커의 논문을 제시하였다. 즉 동성애는 그 수가 많고, 또 “정상”이므로, APA가 당시 개정을 시도하고 있던 DSM-III에서 동성애를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린도전서 10:23)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여야 한다. (계속)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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