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혼돈, 편견으로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에 의해 빚어져...
경청과 상대방 이해 없는 정죄, 상대방 악마화하는 ‘테러리즘’으로
이는 ‘자기 편견’을 ‘하나님 뜻’으로 환원...가장 위험한 ‘실천적 무신론’
예수님은 유대인에 정죄당하는 이방인들의 친구...
원수를 용서해야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지난달 22일 주일설교에서 ‘이-팔전쟁’을 언급하며, “몰렉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이 세대가 두렵다. 힘을 숭상하는 제국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이 세대를 혼돈에 빠뜨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생각과 편견과 판단으로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이라며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정결법에 정죄당한 사람들에게 직접 내려가셔서 화평을 이루신 분으로, 세상을 뒤엎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셨다. 이 험한 시대에 우리가 붙잡을 것은 오직 십자가”라고 강조했다.
김기석 목사가 말씀을 전하며 “2주 만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5000명이나 사망했다. 바야흐로 우리가 거룩하다고 얘기하는 그 땅은 애곡과 비탄, 공포와 불안의 땅이 되고 있다”며 “이 전쟁의 자초지종을 분석하는 기사와 전문가들의 영상이 넘쳐난다. 그래서 나도 이 부분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상황은 복잡하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누가 옳으니, 그르니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가지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철조망과 분리 담장으로 에워싸여 세계 최대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며 “몇 해 전 교우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갔다. 분리 장벽을 둘러보다 팔레스타인 젊은 청년 2명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들의 삶에 희망이 있기를, 아름다운 삶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더니, 그들은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며 ‘희망은 당신들에게만 있다. 우리는 여기에 갇혀 있을 뿐, 어떤 희망도 없다’라고 말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내 귓전에 들려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은 그곳에서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것이 때때로 폭력적으로 나타나고, 폭력적인 무장정파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며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은 나라 잃은 설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1948년에 세워진 이스라엘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그들은 단합하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포위 심성’이라는 것이 있다. 이스라엘은 아랍세계에 포위되어 있다는 생각이 그들의 행동을 극단적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밝혀지고 있다. 두려움과 두려움이 맞부딪쳐 폭력과 어둠을 만들고 있는 셈”이라며 “서로에 대한 증오가 압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사실 그 자체를 압도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사실을 보지 않고 감정을 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극단주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기 일쑤”라며 “나는 사람들의 생명을 취하는 몰렉(Molech)신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해서 이 시대가 두렵다”고 했다.
김기석 목사는 “히스기야 14년,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쳐들어 왔다. 산헤립은 바람처럼 몰아쳐 유다를 초토와 했고 점령했고, 마침내 예루살렘 앞에 당도했다. 히스기야는 항전의 의사도, 의욕도 없이 전령을 통해 산헤립에게 화친을 요구했다. 그 전령의 내용이 참 굴욕적이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철수만 해 주신다면, 요구하시는 것을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이다. 약소국의 비애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했다.
이어 “산헤립이 요구한 금과 은을 감당하기 위해 히스기야는 자신이 성전과 보물 창고에 있는 금과 은 기물들을 바쳤다. 자신이 직접 성전 기둥과 성전문에 입힌 금과 은도 벗겨내서 다 보냈다. 산헤립은 공물을 받고도 약속을 어기고 예루살렘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며 “철저한 절망이다. 희망이 전혀 없다. 강포한 자들은 약자들을 존중할 줄 모른다. 평화의 꿈은 강자들에게 그렇게 유린됐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이 절망의 때에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이 있다. 사방이 막혀 있을 때,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초월이라고 말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그때, 용사조차 울부짖는 그때, 행인조차 길에 보이지 않는 그때, 하늘에 길을 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 한다”며 “역사를 이끌어 가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시작한다. 잠시, 잠깐은 강한 사람들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시간의 끝은 반드시 다가온다. 우리는 안다. 역사 속에 등장했던 제국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무너졌다”고 했다.
그는 “성경은 인간의 오만함의 상징인 바벨탑을 허무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계시록도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큰 성을 무너뜨리신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생각하는 오만함을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이 전해 주시는 이야기”라며 “호세아는 ‘오만한 자는 바람을 심어 광풍을 거둔다’고 말한바 있다. 오만함이란 뻣뻣해짐이고, 뻣뻣해짐은 죽음에 가깝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힘을 숭상하는 뭇 민족들은 불에 탄 석회처럼 쓸모없어 버려질 것이고, 그들은 찍어다가 태워버리는 가시덤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이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지금 당장은 힘 있는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종말론적 세계관으로, 바로 오늘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까닭”이라며 “심판의 때가 이르면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유대인이라는 혈통인가? 아니다. 우리가 교회에 소속됐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백성입을 입증하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잇대어 살고 있는가’이다”며 “몇 주 전에 나는 가장 위험한 무신론은 실천적 무신론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살면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고 했다.
그는 “지금 세상이 겪고 있는 혼란의 태반은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에 의해 빚어지고 있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가 온 인류를 한 가족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와 선 자리가, 입장이,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를 함부로 심판하고, 배제하고, 정죄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억압하고, 폭력을 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살다보면 마음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렇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하신다”며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더듬어 찾기만 해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왜? 자기 편견을 하나님처럼 믿기 때문이다. 자기의 경험을, 지식을, 입장을 하나님의 뜻으로 환원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고 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격변의 시기를 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팔 전쟁은 세계가 심각한 분열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서실 자리를 다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김기석 목사는 “테러리즘의 첫 단계는,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의 씨앗을 마음 속에 심는다. 그러다 그들을 짐승과 괴물이라고 악마화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폭력적 방식으로 그들을 제압하려고 한다”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진실을 듣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편견을 가지고 정죄하기 전에 그의 입장을 귀 담아 들어야 한다.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어 악마화된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다름을 포용하면서 공존, 공생, 상생의 지혜와 제도를 키워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평화를 실천하신 분이 누구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삶이었다. 주님은 유대의 정결법에 의해 더럽다고 정죄당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일을 전혀 꺼려하지 않으셨다. 오죽하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이 붙으셨다. 그들과 함께 만나기 위해, 그들의 삶의 자리로 내려가셨기에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라는 추문을 당하기도 하셨다. 그들과 친구되려는 일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유다사람들이 백안시하던 이방인들과 스스럼 없이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치유해 주시기를 원하셨다”고 했다.
그는 “주님은 미움과 원망의 감정이 잔뜩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원수에게 선물을 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할 때, 비로서 우리는 피해자 의식, 희생자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주님이 12제자와 함께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은 완전히 새로운 사회 질서의 단초였다”고 했다.
이어 “뭇 민족의 왕들이 백성들을 위해 군림하고, 권세를 가진 사람들은 백성들의 은인 행세를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는 그러면 안돼’라며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질서를 뒤엎는 것이다. 결국 이 난감한 시대에 우리가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