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파란 눈의 ‘한국인’ 인요한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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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파격적인 인사에 놀랐다는 반응도 있지만 무기력한 여당을 쇄신할 적임자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다수다.

인 위원장은 전북 전주에서 출생해 전남 순천에서 자란 ‘전라도 토박이’로 불린다. 누구 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4대째 한국에서 교육·의료선교에 큰 족적을 남긴 미국 린튼가의 자손으로 미국인이자 한국인이란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인 위원장은 1959년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그 부모인 인휴 선교사가 전남 순천으로 이사해 어린 시절을 순천에서 보냈다. 그가 파란 눈의 덩치가 큰 미국인임에도 자신을 ‘전라도 토박이’라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전라도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요한의 조부인 윌리엄 린턴(인돈)은 22세 때 한국에 와 48년간 의료·교육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그의 부친인 휴 린턴(인휴)은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주로 전남 도서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60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한 선교사이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인요한은 대전 외국인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사가 된 후엔 연세대 외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며 의료선교에 진력해 왔다.

인 위원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앰뷸런스’를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부친인 인휴 선교사가 교회 자재를 싣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 택시로 광주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큰 충격을 받은 인요한은 부친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응급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 도중에 사망하지 않도록 ‘앰뷸런스’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기아자동차의 아시아토픽 차량 내부를 개조해 응급처치와 간단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게 그가 국내에서 최초로 만든 ‘한국형 앰뷸런스’다.

그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그는 개정된 국적법, 즉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별 귀화 대상자로 선정돼 2012년 3월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동시에 한국인으로 귀화한 첫 복수 국적자이기도 하다.

그가 한국의 의료 발전과 선교에 공헌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가 여태껏 걸어온 길과 여당의 혁신위원장이란 자리 사이에 어떤 특별한 접점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는 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 병원의 외국인 진료소장 등 주로 의료계에 몸담았지 정치계를 기웃거리거나 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보다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더 많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우선 국민의힘이 당의 체질을 갈아엎어야겠다고 작심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두 주전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가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국민이 여당에 왜 등을 돌리는 지 성찰도, 자각도 없었다고 보는 게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 여당 지도부가 유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매서운 회초리를 맞은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가볍게 보면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하나를 뽑는 선거였지만 내년 총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국민적 여론의 추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총력을 쏟았다. 그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함으로써 내년 총선의 결과도 자신할 수 없게 됐다. 그것보다 당장 국민의 실망감이 어느 정돈지 확인하게 된 게 더 쓰릴 것이다.

솔직히 이번 선거 참패를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건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사면·복권시켜 다시 공천한 것과 연관이 있다. 국민이 이를 일방통행으로 여겨 반감을 부른 측면이 없지 않다. 오만한 권력을 심판해 탄생한 윤 정부에 있어 국민 소통 부재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선거 패배라는 치명상을 입은 여당의 선택지는 처음부터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숙고 끝에 특정 정치색이 없고 한국과 한국인을 어느 한국인보다 더 사랑해 이 땅에서 의료 교육 복음 선교에 헌신해온 집안의 인요한 교수를 당을 혁신할 적임자로 선택한 건 누가 뭐래도 바람직한 결정이라 할만하다.

그는 혁신위원장 직 임명을 수락하며 첫 마디로 ‘통합’을 꺼냈다. 어느 재벌 회장이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라고 했던 말 그대로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을 바꿔야 한다. 희생 없이는 변화가 없다”라는 말로 개혁과 쇄신의 방향을 요약했다. 여당이 그의 이런 의지에 전권을 부여할지가 관건이지만 그래도 파란 눈의 한국인 인요한에게 기대를 거는 많은 국민이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