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기독교가 바라보는 인권
기독교에서는 인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로 보고 있다. 인간이 가지는 인권의 천부성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데 성경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 가리킨다(1:26). 인간이 죄를 지어 타락 했지만, 칼빈은 사람이 선악을 구별하며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은 자연적인 천품이며, 따라서 이것은 완전히 말소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과 구별되는 존엄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성경은 타락한 인간임을 전제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억압과 가해적 구조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고 있다.
1. 구약성경에 나타난 인권존중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으로 창조되었으며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사상이다. 최초의 살인이었던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아벨의 피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며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값을 가인에게 물으셨다(창 4장). 또한 창세기 9:6절은 인간의 생명의 고귀함이 하나님의 형상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 여기에서 인간 생명존중의 보편성이 나오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니 다른 여타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재가 된다.
2) 율법에 나타난 인간존중사상
율법에 나타난 인간존중 사상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십계명에 나타난 인간 존중사상이다. UN세계인권선언과 십계명에 나타난 내용 중에는 서로 수렴되는 부분이 있다. 4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인권선언에서는 신앙권(제18조)과 휴식여가권(제24조)으로, 5계명의 부모공경은 인권선언에서는 노후보장권(제25조)으로, 6계명의 살인금지를 인권선언에서는 생명권(제3조)으로, 7계명의 간음금지를 인권선언에서는 자유로운 결혼권(제16조)과 가정보호권으로, 8계명의 도둑질금지는 인권선언에서 노예금지(제4조)와 소유권(제17 조)으로, 9계명의 위증금지는 법의 보호권(제8조)과 공정한 재판권(제10조)으로, 10계명의 이웃에 대한 탐심금지는 차별금지(제2조), 사생활 보호권(제12조) 등으로 등치시킬 수 있다.
둘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출 21장은 노예들을 보호하는 법적조치가 기록되어 있다. 경제적 이유로 팔려온 히브리 노예는 7년마다 자유를 줄 것과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주종관계보다는 가정 존중의 구조를 기록하고 있다. 신명기에는 안식일 준수 계명도 남종과 여종 모두에게 허락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율법은 가난한 자와 약자들, 특히 과부와 고아, 이방인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신명기 15:11에는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고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기록한다. 신명기 24:19에는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 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이주민) 고아(미혼모의 아이들)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고 기록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인간존중 사상을 보여준다.
셋째는 도피성 제도이다. 도피성은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인 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6군데 지역에 만들어 놓은 성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내에서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만든 제도이며, 안전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가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이 드러나면 도피성에 있을지라도 그를 끌어내어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다(출 21:12-14).
3) 선지서에 나타난 인권
이스라엘 왕정시대에 가난하거나 힘이 없는 자들을 지키는 자들은 선지자들이었다. 그들은 고위 권력자들이나 귀족세력들,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사회정의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었던 자들이다. 다윗왕이 자신의 부하의 아내를 갖기 위해 부하를 몰래 암살했을 때 나단 선지자는 목숨걸고 왕에게 대항하였다(삼하 12:9-12). 또한 아합왕 시대에 나봇이 자신의 소유인 포도원이 왕과 이세벨 여왕에게 빼앗기고 그도 죽임을 당하자 엘리야 선지자는 백성의 재산을 강제몰수한 왕권에 대항하여 일어서게 되었다(왕상 21:1-16). 나봇의 억울한 죽음을 폭로하고 왕권의 부당하고 과도한 집행에 제동을 걸었다. 아모스 선지자 역시 당시 귀족들과 부자들이 궁핍한 자들의 재산과 권리를 박탈하는 시도에 제동을 걸고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외쳤다(암 5:24).
이처럼 선지자들은 당시 가난한 자들과 억울한 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변호하는 역할을 감당하였는데 이들이 이렇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내에 율법 헌번 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율법에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보호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돌봄을 기록해놓았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이 법에 근거해 지배층들의 부당하고 과도한 권리행사에 제동을걸 수 있었다. 따라서 한 사회의 인권법적 제도와 체계는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됨을 선지자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다.
2. 신약에 나타난 인권존중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생명권이 매우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사람의 생명이 천하의 어떤 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분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라는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이 더 큰 계명이라”(막 12:31)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는 이 땅에 계실 때에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시고(눅 18:1~8), 죽을 죄인을 살려주시고(요 8장), 그들이 다시 사회 속으로 복귀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 속에서 한 인격으로 회복하고 인권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 행동들이었다.
바울 역시 인권에 대한 강조를 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임을 밝힌다(고후 4:4; 골 1:15). 그리하여 회복된 인간은 그들의 상이한 배경 성 인종 나이 지역 등 을 초월하여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함을 고백한다(갈 3:26-28).
정리하면 신구약에 나타난 인권존중 사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하여 창조되었고, 타락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속되어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권은 이런 점에서 세상의 인권관점에서는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같은 점은 인간의 천부적 존엄성에서 출발점이 같다. 다른 점은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일반 인권관점과는 다르다. 그러나 서로 간에 수렴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며 어떤 인간도 차별받거나 버림받을 이유는 없다는 점이며, 결과적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마땅한 권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인간 상호간에 인권을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인권이 세상적 인권관점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수렴부분이다.
IV. 기독교가 바라보는 새로운 인권 사상 관계권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전통적인 기독교의 인권사상을 살펴보았다. 최근에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기존의 두 가지 인권관의 간극을 메우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인권에 있어서 자유권과 사회권(경제권)의 갈등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갖는 인권이 형성되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인권을 해석하는 시도이다. 이를 “관계권”(relational rights)라고 한다.
1) 관계권의 정의와 출현 배경
관계권이란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위치한 삶의 정황 속에서 “인간 상호간에서로 의존적인 존재이며 인간의 권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권은 영국 기독교 학자들 중심으로 대두되는 개념인데, 기존의 서구 중심의 개인주의적 인권사상을 반성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인간 존재가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관계와 서로간의 상호의존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가지는 존재로 본다. 기존 서구중심의 인간관은 인간의 삶의 정황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이 깔려있다. 이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로부터 시작하였는데 루소가 주장하는 자연의 상태가 인간존재를 남들과 구별되며 자기 존재만으로서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존재가 됨을 밝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인간관은 결국 ‘자아 심리학’을 발전시켰고, 이는 서구사회에서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게 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또한 개인적 인간관은 개개인들이 ‘표출하는 개인주의’를 낳게 되었는데 이는 타인과 상관없이 개인의 자유를 표출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또한 개인주의적 인간관은 인간이 ‘개인의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다. 개인이 사회에서 어떤 소유권을 가짐으로써 인간은 서로 서로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과로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개인주의적 인권은 결국 개인과 국가에게로 책임이 귀결되는 현상을 낳게 되며 이러한 인권은 가족이나 공동체와 그 안에서 연결된 수많은 관계들을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관계권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서구의 개인주의적 인권을 보호하다 보면 관계적으로는 책임질 수 없는 행동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압박을 받는 어떤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였지만 정작 그 피해자는 공동체 안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경우(여성, 노인 등)가 많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인권은 보호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피해자는 더 좋지 않은 상태에 놓일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서구적 개인주의적 인권을 강조하여 그것을 법적 테두리에서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데에는 실패한다는 것이 약점이다. 법적 판결을 받으면 한 쪽은 승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패자가 되어 승자독식의 원리가 작용하게 된다. 그로 인해 패자를 비롯한 다양한 구성원들을 품어내는 총체적인 회복에서 실패하게 된다.
이러한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서 관계권을 주장하는 자들은 인간의 관계에 집중하며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인간의 권리(인권)을 세워가는데 집중한다. 건강한 관계는 다음의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상호적 의무와 책임
2. 충성과 신실함
3. 긍휼, 자비, 친절함
4. 공정, 정의, 진실
5. 상호 관용과 존경
이상과 같은 가치들에 근거한 관계들은 나라, 문화, 종교를 넘어서 건강하며, 이러한 관계들은 착취나 탄압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자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보다는 상대방의 이익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관계권론자들은 인간의 권리를 좀 더 큰 차원에서 보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그에 따른 책임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그래서 인권을 ‘승리’의 관점이 아닌 모든 당사자들의 다양한 상황과 관계 가운데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고 한다. 그 결과는 상호 이해 및 관계 회복으로 나타나도록 한다. 또한 관계권은 한 사회에서 억압에 대한 변혁적인(transformational)을 해결책을 모색한다. 왜냐하면 관계권에서 ‘관계’란 추상적이고 모호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가치에 의한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세워나가는 비전이기 때문에,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관습들은 관계권과는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관계권론자들은 중국이나 기타 권위주의적 국가들이 내세우는 ‘아시아적 가치’ 또는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식 인권’과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UN인권선언에는 자유권과 사회권, 그리고 제3세계가 요구해서 삽입한 발전권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인간 존재를 관계적 측면에서 이해하여 관계권을 인권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처음 시도되는 일이다. 이에 관계권론자들은 향후 UN총회에 인권에 대한 정의 부분에 관계권을 추가 삽입하는 청원절차 뿐만 아니라 각국별로 관계권 입법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