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6~27)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3~4)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밷후 1:10~11)
1. 구원의 방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구원을 위한 은혜의 방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시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우일한 길이자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뚜껑을 열어보니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부만 구원을 얻습니다. 그 일부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니 영원 전에 하나님이 비밀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택하여 두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자녀들은 시대마다 태어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회심과 중생을 거쳐 믿음을 선물로 받아 의롭다고 칭하여 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거룩한 삶으로 성화되고 있고, 구원을 잃어버리자 않도록 보존되고 견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고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일러 우리는 ‘그리스도인’ 혹은 ‘성도’라고 부릅니다. 아마 지상에서 이보다 더 위대하고 독특한 이름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바로 이 이름을 가슴에 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 알려져 있으면서 간혹 사는 모양을 보거나 믿음의 정도를 볼 때에 왠지 구원에 대한 확신은 커녕 정말 저 사람이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인가 할 정도로 의구심을 자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그리하여 전혀 거룩한 성도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까요?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만약 자신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즉시로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완전히 돌아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청드립니다.
2. 나약한 그리스도인들
알다시피 토저 목사님은 교회와 세상 두 영역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을 ‘양다리족’ 혹은 ‘가련한 잡종’이라 하면서 호된 질책을 쏟았습니다. 이런 부류의 특징을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진단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원과 동시에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일러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로 태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거룩한 인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마음속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야만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영적으로 매일 성장하고 성화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를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을 지시고 견인하시어 천국에 입성토록 도우십니다.
그런데 확신이 없는 나약한 그리스도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니 매사가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태는 우리를 사탄과 세상과 육신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게 만듭니다. 이런 인생은 계속해서 사탄의 노예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직접 목숨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사탄과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계속 세상을 등지지 못하고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은 마치 노예에서 해방을 시켜 주었는데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은 노예로 계속 살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자신의 인생이 늘 한결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복이 심하고 굴곡이 많습니다.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터 위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요동칩니다. 이번 주에는 너무나 기분이 좋은 듯 하다가 갑자기 다음 주엔 우울해져서 말도 걸지 못할만큼 무거운 분위기를 딥니다. 그럴 때면 옆의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 받고 삽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성도들의 신뢰를 받지 못합니다. ‘저 사람은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다른 성도들이 속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속)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