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가 수천 발의 로켓포를 발사하며 민간인을 살해하고 일부는 인질로 납치했다. 이에 이스라엘이 즉각 보복에 나서면서 양측 간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유혈 충돌 수준이 갈수록 중동전 재발로 확대되는 우려스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하마스 무장세력 수십 명이 지난 7일 일 유대교 명절인 초막절을 기념하는 음악축제장에 난입해 젊은이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인질로 납치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이들 무장세력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반인륜적 행위는 무슨 이유에서건 규탄받아 마땅하다.
이스라엘이 피의 보복을 다짐하면서 양측의 유혈 충돌은 분쟁의 수준을 넘어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인명 살상과 이에 따른 보복 살상이 중동이라는 ‘화약고’를 또다시 불바다로 만들 수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전면적인 전쟁은 막아야 한다.
걱정은 현재 이스라엘에 120여 명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는 점이다. 유학생과 교민까지 합해 약 570명이 예루살렘과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별 다른 피해가 없다는 소식이 다행스럽다. 하지만 성지순례 등 여행객들의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지 대사관과 외교부가 더욱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해 지난 8일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비공개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이사국 전체가 하마스 무장세력이 저지른 테러 행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상의 실질적인 대책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예다.
미국은 즉각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약속했지만 내심 확전을 경계하는 눈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동전이 재발하는 건 미국으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다. 바로 미국이 가진 전쟁 억지력의 분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의 흔들리는 입지가 한반도의 정세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전이 발발한 틈에 북한이 기습적인 대담 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건 아주 불가능한 가정이 아니다.
지난 4일 미 상원 외교위의 한반도 청문회에서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미트 롬니 의원은 “재래식 무기는 물론 핵무기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핵 보유국(북한) 옆에 있는 한국이 자체 핵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미 연합의회에서 나온 이런 지적은 하마스의 이스라엘의 공격 이전에 나온 것이지만 미국이 우려했던 점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거듭해 온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10월 ‘핵 선제사용’을 법제화하고 지난 9월엔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까지 명시했다. 이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틈새를 노리겠다는 전략인데 여기다 중동전 발발은 북한에 있어 대남 도발의 더없는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북한이 언제 어떤 식으로 도발을 감행하든 우리 군의 대응 능력이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전반적인 전력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우리 군이 북한에 비해 딱하나 모자란 게 핵무기지만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핵이 모든 걸 삼킬 수 있다. 미국 의회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스라엘은 지난 2005년 가자 지구에서 철수하면서 난공불락의 ‘스마트 국경 시스템’으로 불리는 ‘아이언돔’을 설치했다. 그런데 이런 최첨단 방어시스템을 간단히 무력화한 게 이슬람 무장세력 하마스의 재래식 무기였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우리 군 방어시스템의 모델이란 점에서 이번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우리의 방공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 북한 무인기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마구 휘젓고 돌아가는 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그런 대응 시스템으론 유사시에 무작정 당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미 휴지조각이 된 군사합의를 우리만 지키겠다는 건 안보 자살 행위다.
얼마 전 북한은 김정은이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남한의 타격지점을 가리키는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이 이처럼 대놓고 무력 도발 의지를 드러내는 데도 여전히 ‘종선선언’, ‘평화협정’에 목을 매는 이들이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나라를 통째로 북한에 갖다 바치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땅에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러려면 백 마디 말보다 나라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부국 자강의 힘으로 맞서지 않는 한 북한의 무력 도발 의지를 꺾을 방법은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북한이 제2의 하마스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국제 질서의 냉엄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