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의 문화를 소비하고 우리가 생산한 문화를 세상 속에 전파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세상의 문화 중에 그리스도인은 어떤 문화를 가까이하고 어떤 문화는 멀리해야 할까? 영화를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그리스도인은 선정적인 영화를 봐도 될까?” 혹은 “그리스도인은 폭력적인 영화를 봐도 될까?” 만일 된다면 “어떤 수준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공통으로 가지는 질문일 것이다.
고린도전서 5장은 음행하는 세상의 문화에 대해 세상의 풍조에 따르지 말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지키라 조언한다. 10절에서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그들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반면 11절 말씀에서는 교회 속에 그런 문화가 침투하는 것은 분명히 차단하라 명한다.
“세상 속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은 세상 문화에 매몰되어 방종한 삶을 사는 것과 문자 그대로의 율법적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건강한 긴장 속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영국의 기독교 문화분석가인 대니얼 스트레인지 교수는 이런 균형을 잡아주는 삶의 다림줄(건축물의 수직을 평가하기 위해 무거운 추를 달아 늘어뜨린 줄)로서 종교개혁에서 루터가 외쳤던 다섯 가지 슬로건과 각각의 슬로건에 대해 기준이 될 만한 질문들을 제시했다.
오직 성경(Sola Sciptura):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전제 아래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려고 할 때 1) 왜 모두 이 영화가 좋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사실로 볼 때 그들은 무엇을 중요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기는가? 2) 나는 왜 이 영화를 즐기는가 혹은 왜 이것이 즐겁다고 생각하는가? 이 사실로 볼 때 나는 무엇을 중요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기는가? 3) 이 영화의 내용이 성경과 비교할 때 어떤가? 성경도 이 영화의 주제를 중요하거나 바람직하게 여기는가? 혹시 이런 메시지가 성경이 아닌 다른 세계관의 큰 이야기(메타네러티브)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오직 은혜(Sola Gratia):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그리스도를 통해 ‘해 주신’ 일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1) 영화를 선택할 때 내 본능이 그 영화를 거부하라고 말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율법의 명령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의롭다 인정하신 은혜 때문인가? 2) 어떤 문화를 잘못 소비하고 두려움에 빠져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은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직 믿음(Sola Fide):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이 주신 모든 유익을 받기 위한 수단이 ‘믿음’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문화를 수동적으로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능동적으로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세속의 영화에서 기꺼이 즐기는 부분과 어쩔 수 없이 참고 보는 부분이 있는가? 이런 타협이 필요 없는 좋은 것으로만 형성된 문화를 만들어 낼 방법이 있을까? 2) 문화 창출을 위한 나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만들어 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할 수 있을까?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와 부정함을 씻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1) 어떤 측면에서 이 영화가 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연결되게 하며, 어떤 면에서 단절시키는가? 2)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태도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보여주는가?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죄와 부정함에 오염된 것을 인정하거나, 즐기거나, 추구하는 것인가? 이 영화를 즐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나의 태도에 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앞의 네 가지 슬로건을 통합하고 정리해 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따라서 모든 것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높이기 위해 존재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요약하면 문화 소비와 창출에서 위의 다섯 가지 슬로건과 거기에 연결된 질문들을 선택의 다림줄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획일적일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독특한 기질이 있고, 삶의 기준에 대한 민감성도 다르며, 삶의 배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위의 기준에 의해 거부되어야 할 것이 분명한 영화지만 때로 복음 전파를 위해 그 내용을 알아야 할 경우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런 영화 봐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이 영화를 보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라는 반문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