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의 공허함을 가장 큰 문제로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당신 인생의 공허함을 가장 큰 기회로 보신다는 것을 당신에게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이 책 곳곳에서 우리는 공허함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 이야기를 통해 다음 사실을 반복해서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채워 주셔서 우리의 공허함 가운데 가장 좋은 일을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와 교제하고자 하는 갈망을 심어 주신다. 이는 당신이 느끼는 외로움이 사실은 당신의 진정한 연인과 더 큰 친밀감을 추구하게 만드는 성령님의 역사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외로운 시간 덕분에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누릴 준비를 할 수 있다. 온통 텅 빈 곳밖에 보이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두라. 당신 편인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주먹을 휘두르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의 손이 당신 삶에 역사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섭리조차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의 손을 통해 온다. 당신 삶에 이 공허함을 허락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다.
낸시 거스리 – 공허함을 채우시는 하나님
정의가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는 표현처럼(시 85:10) 하나님의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와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 죽음은 사람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헐고 그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엡 2:14).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누어지고, 적과 원수의 관계 속에서 평화는 발견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손실이 보상되고 손해가 배상되는 정의 속에서, 원수를 용서하는 사랑 속에서 평화가 싹트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반드시 나타나야 할 성령의 열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갈5:22).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한국교회환경연구소 –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세계
기독교의 창조론은 세계와 인간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만든 이에게 소유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할 때마다 이름을 부여합니다. 고대 근동(중동) 사회에 서는 이름을 지어서 부르는 사람이 소유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상품마다 누가, 어떤 회사가 만들었는지 소유권자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적 소유권까지 있습니다. 이것을 침해하면 처벌받습니다. 이 세계와 인간에게는 주인이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내 것인 양 함부로 다루면 처벌받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대하고 다뤄야 합니다. 환경보호와 인격 존중의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창세기가 아니면 왜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지 근거를 댈 수가 없답니다. 교회의 그리스어 원어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입니다. 그 어원적인 뜻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 부르심을 받아 따로 떨어져 나온 사람의 모임(공동체)을 말합니다. 세상적인 삶의 방식과 문화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화의 세계로 불려 구별된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모인 신자들의 새로운 공동체이지요. 세상은 피라미드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항상 상층이 하층 위에 군림하지만, 교회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왕으로 모시고 모두가 대등한 관계로 교제하며, 힘없고 약한 자를 돌보는 공동체입니다.
이복규 – 기독교 이해의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