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에 따르면, 인간은 비록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세상에 가장 늦게 등장하지만 사실상 피조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에 대해 무지한 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무지는 곧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고귀한 은총을 망각하는 불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해 등장한 인간은 마땅히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창조 세계라는 “아름다운 극장”에서 “하나님의 창조 솜씨에 대한 경건한 즐거움을 누리며,” 창조주를 찬양해야 한다. 그때 인간은 창조의 은총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존재의 탁월함과 존재의 무한한 가치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다양한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와 선을 드러내는 “가장 고귀하고도 탁월한 모범”이기 때문이다.
김광묵 – 장 칼뱅, 퇴계를 만나다
2050년, 한국 사회가 이단과 무신론자의 나라가 되는 미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 교회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300만 이하로 붕괴된다는 말이다. 최악의 경우, 이단의 숫자가 기독교인 실제 출석 숫자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2050년, 한국 사회에서 이단이 기독교 실제 출석 숫자보다 늘어나는 미래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그 수치가 기독교인이 늘어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다. 무신론자가 더 늘어나는 것뿐이다. 한국 사회가 이단과 무신론자의 나라가 되면, 기독교인의 신앙이 낮아지는 것을 넘어 와해되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 예수님이 경고하신,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말씀이 현실이 될 것이다. 대비하라. 헌금 기근의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2년 이후 한국 교회 성도의 헌금 감소는 우연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정체, 가계 부채 부담 증가, 성도 감소 시작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지금 한국 교회 성도의 삶은 고달프다. 가계 살림은 고통스럽다. 그 여파가 교회 재정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그래서 교회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필자가 미래학자로서 기업과 정부에게 제시하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한마디로 전망하는 말은 ‘성장의 종말’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빠질 급박한 위기에 놓여 있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 부담은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추세는 되돌리기 어렵다. 오히려 악화될 것이다.
최윤식 – 2050 한국교회 다시 일어선다
기독교 복음이 유일한 진리인 이유는, 그 말씀을 주신 이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진리의 문제를 도덕과 윤리의 실천 여부로 바꿔 버렸습니다. 기독교 진리를 윤리와 도덕의 실천 영역으로 가지고 가서 거기서 경쟁하자고 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이 아닙니다.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이웃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보다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냐, 우리가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느냐는 것과 그래서 구원받았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착해서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착함이나 우리의 행위는 숟가락 하나도 올려놓을 수 없습니다.
박건일 –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