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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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채 목사(케냐 멜빈대학교 총장)

서병채 총장
나는 연구소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 멜빈 목사님께서 두 가지를 당부하셨다. 하나는, 혼자서는 한국 전체를 위한 사역을 못하니 팀을 만들어 함께 진행해나가라. 둘째는, 월간 소식지를 만들라. 이것은 사역의 진행과 성장에 절대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조언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20여 년간 이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처음에는 내가 뉴스레터를 만들었지만 몇 달이 지나자 그 소식지가 우리의 사역을 이끌고 간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사역에 탄력이 붙으니 그련 현상이 있는 것 같았다.

신문에 칼럼을 쓰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어쩌면 칼럼이 나를 이끌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오늘은 욕심에 대해 적어 본다. 외화를 봤는데, 제목은 ‘House of GUCCI’였다. 부제는 ‘현재 구찌에 구찌 가문의 사람은 없다’였다. 내용은 남편이 구찌였는데 아내가 사람을 시켜 그 남편을 살해하였다는 이야기였다. 남편인 구찌는 돈이 잘 벌려서인지 욕심이 과했다. 집도 지나치게 컸고, 차도 고급차가 몇 대씩이나 되니 회사 임원들이 염려할 정도까지 되었다. 결국 욕심은 죄를 낳고 사망에 이른다는 말씀이 맞는 것 같다.

한 번은 신학교 때 있은 일인데 총장이 임기를 서너 번 넘겨서 10년이 훨씬 지나가니 너무 오래 한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은 쫓겨나게 되는 안 좋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나도 개인적으로 잘아는 분이고 나도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이 경우는 개인 욕심이라기보다는 함께 추종하고 있는 그룹의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구찌의 경우처럼 개인 욕심도 문제이지만.

그룹의 욕심인 경우도 문제가 되곤한다. 예를들어 큰 교회의 경우 담임목사께서 교회를 키워 왔으니 70세가 넘어가는 데 교인, 즉 장로님들이 2~3년 더하라고 부추기곤 한다. 그것도 유혹인데, 그룹의 욕심이 작용하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염려가 많았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 2~3년 더 했을 경우, 결국은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와 수고가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또 분명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텐데… 결국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룹의 바람이라고도 해도 아닌건 아니라고 결단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 위의 첫 번째 예는 그룹 욕심 유혹에 넘어간 경우이고 후자는 그것을 과감히 뿌리쳤기에 현재 두 분의 위치는 극명하게 차이가 나있다. 전자는 지금도 교단의 후배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고, 후자는 지금도 그 교회에서 원로목사로서 존경받고 교계에서도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어 있다.

욕심이란 뭔가? 지나치게 뭔가 바라는 것 아닌가?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내, 최고의 며느리 등등도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며느리 감에 대해 좀 지나치게 기대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아들이 대학원도 나오고 미국에 유학도 갔다 왔고, 강남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할 즈음이 되어서 여자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시켰는데 퇴짜를 맞으면서 결국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 결국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었고, 아들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부모들의 반대로 여자 쪽에서 데리고 갔다. 이쯤 되니 아들이 수년 동안 부모를 원망하면서 홀로 지내는 것을 보았다. 부모님의 지나친 욕심으로 생겨진 일이라고 봐진다.

우리대학교도 욕심이 작용할 수도 있다. 갑자기 커지고 싶은 욕심, 학생 수가 많아지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커질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갑자기 커지기를 바란다면 그것도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것은 재정문제와 관련되어 있기에 무리한 후원을 시도하는 것은 욕심이다. 학생 수도 갑자기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상황, 또 지역적인 것도 고려된다. 우리 학교에서 두 시간 거리 내에 이미 수십년 된 대학교가 두 개나 있다. 그러니 이제 2년 밖에 안된 우리대학교는 어린 애기와 같은 것이니 건물도, 학생 수도 시간이 필요하다. 갑작스런 두 가지 시도는 욕심이고 또 무리하게 진행시킬 필요도 없다. 한두 사람의 욕심으로 될 일이 아니다. 현재에 감사하며, 또 주어진 것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욕심과 비전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즉 욕심인가, 비전인가의 문제이다. 욕심은 출발점이 내 중심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비전은 주님께서 출발점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니 무한대로 발전되어도 문제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욕심이 무한대로 진행된다면 반드시 사고가 나며 그 욕심이 우리 자신을 죽인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주님 주신 비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일용할 양식, 거기에 필요한 직책은 감사히 그리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비전을 통해서 부자가 된다든가 지나치게 명예를 추구함은 결국 우리를 자멸로 이끌고 말 것이다.

#서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