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서사(메타네러티브)를 창조-타락-구속-완성의 4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 우주와 모든 생명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것의 최고봉이 인간의 창조이며, 그 인간에게 첫 명령을 내리셨는데 우리는 이를 문화명령 혹은 생육/문화명령이라 부른다.
문화의 창조를 위임받은 인간(창조):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6~28)고 하신 것이 문화명령의 내용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에게 가정을 허락하셨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일부일처의 가정을 그 명령을 수행하는 기본 단위가 되게 하셨다. 아담이 처음으로 한 일은 모든 생명체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체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창조적인 일이었고, 현대의 학문으로 말하자면 생물분류학에 해당한다. 또 자신의 배필인 하와에 대한 찬사는 문학적 창의성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감당할 창의적인 능력을 부여하셨고, 그것을 세상 속에서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게 하셨다.
문화 파괴자가 된 인간(타락): 그러나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깨뜨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도 파괴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나,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인간은 농경문화와 목축문화를 형성하며, 수금과 퉁소 같은 악기도 만드는 원래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적 사역을 이어갔다. 그러나 죄로 인한 살인과 성적 타락의 문화로 노아의 홍수라는 처벌과 하나님께 대적하는 바벨탑의 문화로 인해 언어가 혼란해지며 지면에 흩어지는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원래 부여하신 창조적인 문화와 함께 죄로 인한 파괴적인 문화도 인간 세상에 공존하게 된 것이다. 이후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의 명령을 대적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형성한 문화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복음이신 예수(구속): 복음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우리와 함께하셨으며,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죄 씻음과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을 모르는 자에게 이를 전파할 임무가 주어져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따라서 때때로 세속의 문화를 복음의 전달 매체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복음 전파가 방해받는다든가, 주변의 연약한 지체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복음에 뿌리내린 문화(완성): 수년 전 세계관 강의 후에 받은 질문이 생각난다. 어떤 청년이 전자댄스음악(EDM, electronic dance music)이 유행인데 이런 음악을 교회찬양에 도입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쉽게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음악, 미술, 시, 같은 예술은 가치중립적인 수단이다. 거기에 어떤 생각을 실어서 전달하느냐에 따라 다른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물론 익숙한 장르의 음악을 매개로 복음의 메시지를 실어 전달하면 복음 전파에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초신자 중에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것을 주로 접하던 댄스클럽을 떠올려 시험에 들게 한다면 오히려 복음 전파에는 역효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아닌 우상에 뿌리내려 형성하는 문화의 열매는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세속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영적 전쟁이다. 미국의 신학자 존 프레임(John Frame)은 “문화란 사회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자신의 이상을 따라 만드는 것이다. 이상을 제시하는 것은 믿음이나 신념, 즉 종교이다. 우상을 숭배하고 거기에 예배하는 것이 세속적 문화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한 예배가 기독교 문화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문화란 우리의 마음에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방식이다.
타락한 인간은 죄로 일그러진 형상과 악한 마음의 산물이 드러나는 문화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문화를 통해 스스로 혹은 후속세대를 지배하면서 우상 숭배적인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에 이르게 하는 그 길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복음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새로운 문화로의 변혁에 앞장서야 한다.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