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개적인 회개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성서적 회개의 참모습은 공개적인 회개의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하는 질문이다. 누가복음 3장 10-14절은, 이 질문에 대한 해석학적 적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답을 줌으로써, 회개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을 열거하고 있다. 즉 나누어주는 삶(11절), 깨끗한 삶(13절) 그리고 올바른 삶(14절)을 교훈하면서, 구체적인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공개적인 회개를 우리의 삶에 적용할 것인가? 진정한 회개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예배 중에 침묵으로 참회 기도를 할 때, ‘하나님과 나만 아는 죄’를 고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하나님과 나만 아는 죄로 비밀에 부치니까 습관적으로 같은 죄를 반복한다. 예수말씀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은 공개적인 회개이다. 언제까지 비밀에 부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형식적인 기도만 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도 아시고 또한 알 사람은 다 아는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습관처럼 죄를 짓지 않게 된다.
1907년 평양사경회 동안에 종말론적으로 임박한 심판사상에 직면하게 되자 형사처벌을 받을만한 각종 죄까지도 공개적으로 자백하는 일들이 교회 지도자들과 평신도를 가릴 것 없이 일어났다. 공개적인 회개는 한국인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다. 배위량(W. M. Baird)에 의하면, “살인과 간음”뿐만 아니라, “방화, 술주정, 도둑질, 강도, 거짓말 등”과 더불어 “시기, 질투, 멸시, 미움 등” 온갖 죄악들을 낱낱이 회개하였다. 스왈론(W. L. Swallen)도 당시의 공개적인 고백 목록들을 “사기, 교만, 세상욕, 음란, 탐심, 미움, 질투 등”이라고 제시하였다. 무어(J. Z. Moore)에 의하면, 당시에 공개적으로 고백한 회개 중에는 “조혼, 교육, 부정, 주초문제 등”이었다.
이러한 회개는 ‘통회 자복’의 성격이었는데, 이 같은 사실은 편하설(Charles F. Bernheisel)의 다음과 같은 증언으로 확인된다.
우리는 함께 즐겁게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1월 2일에 시작된 겨울학교에 몰입했다. 그 다음주 6일부터 15일까지 영성강화와 성령 충만을 위한 저녁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서 이제껏 말로만 듣던 광경들을 목격했다. 성령이 청중을 사로잡아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통회 자복하였다.
이러한 ‘통회 자복’은 서로 죄를 고백하는 공적인 회개의 자리가 되면서 그 파급효과가 아주 컸다. 이로써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불타기 시작한 사경회가 4월 1일에 개학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옮겨붙었다. 그는 신학교의 사경회에 관하여 “한 주간 동안 사경회가 활기차게 진행되었는데, 거의 모두가 통회하는 심정으로 죄를 고백하였다.”라고 증언하였다.
(4) 종말론
한국초기교회에는 임박한 심판사상이 만연해 있었다. 이것은 당시에 강성했던 종말론의 영향도 컸다. 편하설(Charles F. Bernheisel)은 1907년 3월 20일자의 일기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지금은 요한계시록에 관한 세이스의 강좌를 다시 읽고 있다. 강좌는 놀라왔다. 집에 있는 동 안 아내와 함께 요한계시록을 공부했다. 이제까지 요한계시록의 의미를 몰랐다. 정말 새롭고 놀라운 책이다. 요즈음 읽고 있는 이 강좌들과 브룩스 박사의 마란타(Marantha)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재림에 대해 전천년설을 믿게 되었다. 전에 이 문제를 연구한 적은 없지만 후천년 설을 지지했었다. 지금은 전천년설이 성경적이고 옳다고 믿게 되었다.”
이는 종말론에 관한 언급인데, 한국초기교회가 종말론에 관해 혼란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바로 보여준다. 세이스(J. A. Seiss)는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한 목회자로서 저명한 책들을 쓴 목회자이었는데, 특히 그의 요한계시록 주석은 3권으로 발행되어 총1,417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또한 브룩스(Phillips Brooks)는 당시에 설교학 강의를 1877년에 예일대학에서 행할 정도로 영향력이 많은 젊은 목회자이었다. 이들이 행한 종말론에 관한 강의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종말론에 관한 열기는, 이미 편하설이 자신의 일기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한국교회에 천년왕국설(Millenarianism)에 관한 갖가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천년왕국설은 예수께서 성도와 함께 왕 노릇 하고 최후의 싸움, 일반적 부활, 최후의 심판, 최후의 완성 등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론으로서 4가지의 학설이 있다. 첫째, 후천년왕국설(Postmillennialism)은 재림이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 역사 안에 있는 교회로 설립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둘째, 무천년왕국설(Amillennialism)은 재림 후나 재림 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천년 통치를 고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셋째, 전천년왕국설(Premillennialism)에서 재림은 사탄의 속박과 예수의 지상 통치, 성도들의 일시적인 부활 이후에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넷째,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정적인 약속들과 관련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을 섭리론적 전제하에 해석하여 마지막 날에 회복될 이스라엘의 운명과 관련을 짓고 있는 주장이다.
이러한 4가지의 천년왕국설은 지난 2,000년 동안에 계속되어 온 교회사에서 제기된 것이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기독교 이전에 메시아가 다스리는 세상 곧 의가 승리하여 보좌에 앉고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계가 올 것을 소망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메시아 신앙은 주전 100년경부터 변화에 직면하였는데, 그 이유는 세상에서 점점 커지는 비관론 때문이었다. 즉,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악하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메시아는 이 세상에서 제한된 기간 통치를 하고 그 이후에는 지구의 종말이 올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메시아에 대한 신념에서 천년왕국설의 이론이 대두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중시할 때, 천년왕국설은 예수의 교훈이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천년왕국설은 초기 교부의 경우에 정통주의 신앙의 주요한 한 부분으로 신뢰한 사람들도 있지만, 부정한 사람들도 많다. 천년왕국설이 비판받게 된 것은 약속된 축복에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뒤섞여서 점차 그 해석이 물질적인 것에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천년왕국설을 영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계속)
#소기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