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변혁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면 반드시 세속의 문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인데,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가 없고, 이웃과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는 반드시 문화가 발생하고, 이전의 문화를 이어받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신 가장 첫 번째 명령인 생육, 번성, 충만,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은 모든 인간에게 주신 것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문화를 살아내고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주님께 충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문화 속에 살되 그 문화에 너무 빠져서 복음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반대로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문화에 가장 적합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신에게 경배하게 만드는 것이 우상이다. 세상은 겉으로 드러나기 쉬운 돈, 명예, 권력, 섹스 같은 잘 알려진 우상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조심할 것을 강하게 경고한다. 그러나 문화적 우상에 대해서는 비교적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의식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화에는 앞의 모든 것이 포함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영향을 피하기 힘들다.
셋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의 문화를 복음으로 변혁시키며 살아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동화되지 않음으로써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질문받을 수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에 대해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 말을 항상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탈기독교적인 문화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고 방어적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방법을 세워 두어야 한다.
넷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값없이 죄 사함을 받았다. 그분이 주신 그 크신 사랑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사랑한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분이다. 네덜란드 수상이었고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우리 인간 존재의 전체 영역에서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고 부르지 않은 영역은 단 한 군데도 없다.”라고 요약한 바 있다. 그분은 만물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로서 세상의 각 분야에 파송된 그리스도의 대사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의 문화에 참여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린도후서 10:4~5절의 말씀처럼 육신의 싸움이 아닌 영적 전쟁임을 직시해야 한다. 세속의 문화를 성경적 세계관으로 잘 분별하려는 노력을 시작할 때 먼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전문 분야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의 전공 분야는 자신의 지식체계 중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고민하고 연구하여 높이 쌓아 올린 영역이다. 문제는 대학이나 그 이후의 과정에서 배우는 전문 지식이 대부분 세속 전문가들의 이념에 오염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이후에 자신의 전공 분야부터 세속의 이념으로 오염된 기존의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 문화 속에 거하되 그에 동화되지 않고,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제자로서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지지자나 숭배자가 많은 문화가 주변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일제의 통치와 한국전쟁 등 교회가 심하게 핍박받을 때, 한국교회는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하나님 섬기는 일에 목숨을 걸었고, 비록 소수였지만 도덕적으로 사회의 지표로 존경받았었다. 또한 그 암울한 시기에 성경의 서사를 예술로 승화하여, 연극으로, 찬양으로, 예배당의 장식으로 세상의 다른 곳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고 주변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양적팽창과 크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이라는 우상을 바라보는 동안, 교회 밖 세상도 경제적, 문화적 수준이 상승했고 기독교 문화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한 네오마르크스주의는 절대 진리와 절대 선을 부인하면서, 선전과 선동을 통해 진리와 선이 공존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낡은 것이라 배척하게 한다, 더 나아가 진리와 선이 배제된 거짓 아름다움은 새롭고 신선한 아름다움이라 부르며 경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다른 복음이 없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진, 선, 미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세상의 문화 속에서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드러내며 복음을 세상 문화의 언어로 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세상 문화는 변혁될 것이다.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