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총장 강성영) 신학대학원(원장 전철)이 13일 오전 본교 채플실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출범 70주년기념 송암·만우·장공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사)장공기념사업회(이사장 육순종 목사)와 만우기념사업회(이사장 서재일 목사), 송암교회(김정곤 목사)가 주관했다.
먼저, 개회사를 전한 서재일 목사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이자 신학자 존 녹스(John Knox, 1514~1572)를 예로 들어 “강력한 기도운동과 성령 충만한 뜨거운 마음으로 출발하는 대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으며, 이어 육순종 목사는 “송암·만우·장공이라는 우리의 뿌리를 살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그 분들의 뜻을 되새겨 서로 공유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사를 전한 김창주 목사(기장 총무)는 “송암 함태영 목사를 기억하면서 그분의 역사를 후세들에게 가르쳐 역사에 남기며 자랑스러운 어른의 삶과 진실을 밝히게 된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어른들이 이 캠퍼스에서 많이 배출되어 우리나라와 세계를 위해 섬기는 일꾼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이어서 학술대회 주제 강연이 진행됐다. 먼저, ‘근대인 함태영’이라는 주제로 함재봉 교수(한국학술연구원 원장, 함태영 목사 손자)가 발제했다.
◆ 근대인의 전형, 송암 함태영 목사
함 교수는 “19세기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들은 서양의 근대문명을 거부하면서 조선을 실패한 국가로 전락시키고 나라마저 빼앗긴다. 조선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근대문명을 도입하고자 끝까지 노력한 것은 무반·중인·향리·서얼·서북인 등 조선의 제2신분계층이었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일부는 한일합방을 전후로 개신교로 개종한다. 개신교는 조선의 국교인 유교의 핵심 제례인 제사를 철저히 금했다”며 “몰락한 조선의 주자성리학 대신 채택한 사상 유교를 철저히 배척했다. 이렇게 조선의 종교혁명이 시작됐다”고 했다.
함 교수는 “함태영은 무반·서북인·개신교도로 구한말의 계급혁명과 종교혁명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며 “일제시대 내내 조선의 개신교 조직에 몸을 바친다. 3.1운동을 조직한 것은 물론, 해방의 순간까지 수많은 노회와 신학대학을 세우고, 교회에서 사역하며 조선의 개신교를 조직했다”고 했다.
또 “해방 이후 함태영은 교회의 재건을 통해 새 나라의 건국에 이바지한다”며 “수많은 개신교 종교단체들을 조직하는 동시에 한신대학교 학장으로 봉직한다. 이러한 조직을 바탕으로 1951년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함태영은 조선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근대화의 과정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온몸으로 체화한 근대인의 전형”이라며 “무반·서북인으로 조선 최초의 근대전문교육 기관인 법관양성소를 졸업하여 근대법치를 상징하는 판·검사를 역임하고, 한일합방을 전후로 개신교로 개종한다”고 했다.
아울러 “투옥 3년 만에 석방된 후에도 각지의 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고, 노회를 이끌면서 교회조직에 헌신한다. 해방 후에는 개신교가 꿈꾼 기독교 민주국가 건설에 이바지한다”며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역사는 근대·계급· 종교·정치혁명의 역사였으며, 함태영은 이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한 근대인이었다”고 했다.
◆ 송암과 장공의 신학적 입장의 차이
이어 ‘송암의 사회복음 신학과 장공의 사회혁명 신학의 화이부동(和而不同)-그리스도·교회·국가 3실재의 권위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는 “기장과 한신대 기초를 놓던 초창기 시절 함태영 목사는 바르게 자리매김되지 못해왔고, 기장과 한신대 초창기 초석을 놓은 3대 인물(김대현, 송창근, 김재준)로서만 언급되어 왔다”고 했다.
이어 “송암 함태영 목사는 법관, 심계원장, 부통령 등 관직에 이름을 올린 사회적 인물로서의 의미보다 훨씬 큰 중량을 지닌 강직하고 청렴한 신앙인이었다”며 “남강 이승훈과 함께 기독교계를 대표하여 3.1 만세운동 거사를 가능케 한 애국자이며, 조선신학교 이사장직(1940년)과 한국신학대학 학장직(1951년)과 기장 교단 총회장직(1956년)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기장 교단과 한신대학의 초창기 초석을 놓은 4대 기둥(김대현, 함태영, 송창근, 김재준)으로 분명하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목사는 “송암의 신앙이 한국교회의 특징으로서 본래적 의미에서 말하는 건전한 복음주의 신앙이라면 장공도 그 점에서 송암과 같다”며 “그렇다면 송암과 장공의 입장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 차이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궁극적 권위의 실재’이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역사 속에 출현한 모든 거룩하고 고귀한 것들(제도적 교회, 국가질서와 국가권위, 신성한 이념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최종 판단규범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에 있다”고 했다.
아울러 “장공의 신학은 칼 바르트, 폴 틸리히, 디트리히 본회퍼, R.니이버 등 20세기 후반기 현실진단과 교회 사명을 위한 ‘신학적 지평’을 가졌다“며 “‘시대의 아들’로서 송암 함태영은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 말한다 할지라도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주의 신학, 라우센부쉬의 사회복음, 신부적 국가관’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장공과 송암의 신학적 색상엔 연속성과 불연속성 곧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송암 함태영과 만우 송창근-민족과 역사를 품는 에클레시아 운동’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주한 교수(한신대 신학부)는 “송암 함태영 목사는 1873년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났으며, 봉건적 질서와 근대적 국가 이상이 충돌하는 혼란고 갈등의 시기에 법조인, 목회자, 학교 경영인, 정치인으로서의 한국교회 개혁과 사회혁신 운동에 헌신했다”고 했다.
이어 “만우 송창근 목사는 1898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나 성빈과 경건을 중심으로 일평생을 산 인물”이라며 “만우의 자화상은 신학자, 목회자, 교육자로서 그의 인격과 신앙, 민족과 교회를 향한 열정은 하나로 엮여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송암과 만우는 ‘세상의 빛과 소금’, ‘성빈’을 기독교 신앙의 요체로 보았고, 또 기독교 복음의 토대 위에 교회가 국가를 굳긴히 세우기를 열망했다”며 “그들의 삶 에서 역사와 민족, 교회와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교권의 횡포와 교리에 포로가 된 신학을 비판하고 원초적인 복음으로 회귀, 즉 예수 정신으로 복귀를 주장했다”고 했다.
아울러 “민족 교과서 관점에서 볼 때 송암과 만우는 한국 민족의 주체적 신앙관의 정립을 강조하며 기독교 신앙을 국가와 사회의 윤리적 토대로 삼고자 했다”고 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송암·만우·장공의 세계와 한신·기장의 세계’라는 주제로 발제한 박종화 목사(前 장공기념사업회 이사장)는 “한신과 기장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송암·만우·장공 곧 ‘송만장’ 어른들을 우리들의 기억과 가슴에 담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분들이 보여주신 길의 내용은 ‘관용의에 덕성’, ‘목양의 영성’, ‘신학적 지성’이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전제를 지닌다”며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고백인 ‘이 땅에 성육하신 그리스도’이다. 세 분의 가르침은 다양하지만 하나이며, 하나이지만 다양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관용·영성·지성이 하나가 되어 한신과 기장과 이 땅에 열매 맺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행사는 이후 토론과 질의응답, 박종화 목사(만우기념사업회 총무)의 광고, 전상건 목사(기장 부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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