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크로 법, 린칭 나무, 레드 서머, 연좌농성, 에밋 틸, 최근 로드니 킹 사건까지 긴 역사 속 투쟁을 거쳐 노예제를 몰아낸 이후에도 미국 내 흑인 인종 차별의 목록은 끊이지 않고 있다. 흑인 안에는 오랜 울분의 감정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뿌리 깊은 허무주의가 아직도 자리해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에 관해 무어라 말하는가?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당한 특정한 고통에 대해 십자가는 무엇이라 말하는가?
아서 매컬리 교수(휘튼 칼리지 신약학)는 본 도서에서 성경을 통해 흑인의 분노와 고통의 사안에 대한 해석과 고찰을 시도한다. 저자는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고통과 분노가 흑인의 비통함을 다루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또한 부활, 승천, 최후 심판이라는 성경의 핵심 주제가 흑인의 분노와 고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서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흑인의 반복되는 탄식이었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착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미국은 과거뿐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흑인 가정과 교회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두려움을 계속 불어넣기 위해 칼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최종 결정권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 흑인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우리의 몸만 죽일 수 있는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기억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순간들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천부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 권리가 우리의 피나 정신 건강을 희생하여 얻어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경찰 신학은 자유의 신학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노예제를 지지하시는가? 이것은 흑인 그리스도인에게 굉장히 위험한 질문인데, 이 질문을 한 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제공하신 해석 모델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특정 본문보다 하나님의 더 넓은 창조의 목적에서 출발하여 논지를 펼치신다. 그분은 어떤 본문들이 이상을 제시하기보다는 인간의 죄를 제한한다고 주장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신학을 바르게 세워 갈 때 그러한 본문들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노예제가 하나님의 원래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창조로부터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의 해방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거꾸로 기독교 종말론에서 맛보기로서의 현재의 해방을 추론할 수도 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더 많은 질문들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루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내가 원한 것은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위의 질문들에 누구든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성공적으로 답했는지 판단하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의 여부가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성경과 씨름하고 답을 기대하는 과정 자체가 소망의 연습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흑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절망을 통과하여 더 밝은 미래로 나아올 수 있게 했던 신앙의 행위다. 성경은 위로의 원천이었지만, 또한 그 이상이기도 했다. 그것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행동을 고무했다. 흑인의 몸과 영혼을 해방시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