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지용훈 목사가 지난달 31일 문화선교 모임 ‘프레이즈 게더링’(대표 곽수광 목사) 모임이 열린 신촌의 카페 히브루스에서 말씀을 전했다.
‘복음과 쉐마’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눈 지용훈 목사는 “‘말씀 암송’을 통해 나의 생각으로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게 해야 한다”며 “그 가운데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용훈 목사는 “오늘 나누고 싶은 주제는 ‘동행’이다. 이 단어는 너무나 심오한 단어다. 동행의 히브리어는 ‘할라크, 얄라크’인데 그 뜻은 너무 간단하다. ‘걷다’이다. 하나님께서는 동행의 비밀을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 ‘쉐마 신앙’, 즉 신명기 6장 4~9절 속에서 ‘말씀을 새겨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신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말씀을 새기라는 표현도 사람들이 각자가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서 새기는 방법이 다양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새기라’는 표현 바로 뒤에 아주 구체적인 행동을 정확히 명령하셨다. ‘앉고, 길을 걷고(히:얄라크 동행), 눕고, 일어설 때마다’이다. 그리고 쉐마의 요약인 여호수아 1장 8절 속에 말씀을 새기는 방법에 대해 ‘입에서 떠나지 않게 묵상하라’고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
그는 “이 구절 속에서 ‘묵상’(默想) 조용할 ‘묵’, 생각할 ‘상’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이다. 묵상의 히브리어 ‘하가’(Haga)는 ‘소리를 내다. 선포하다. 으르렁 거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입에서 떠나지 않게 소리로 선포하는 것이 말씀 묵상(새김)의 본질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밀은 앉고 길을 걷고(주) 눕고 일어설 때마다(야)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소리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도 알아 들을 수 있는 표현이라서 오히려 ‘동행’을 심오하게만 생각하는 우리가 못 알아듣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 “앉아 있을 때는 성경책을 보고 읽으며 소리로 선포할 수 있지만, 길을 걷고 눕고 일어설 때도 말씀을 선포하려면 암송할 수 밖에 없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동행의 비밀은 ‘쉐마’ 신앙 차원에서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에 말씀을 많이 연구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음과 부활 승천 그리고 보좌에 연합되었다는 복음의 온전성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을 만난 직후부터는 성령께서 말씀을 연구하는 것보다 성경을 암송하는 신앙으로 이끄셨다”고 했다.
지용훈 목사는 “성경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동행에 중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동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방법인 ‘쉐마’에 그대로 순종하여 말씀을 암송하는 삶이 가장 복된 동행이다. 쉐마는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며, 이방인에게도 권면하시는 것이다”라며 “누군가가 ‘왜 지용훈 목사는 실패한 이스라엘의 방법을 강조하는가?’라고 묻기도 하는데, 믿음에 실패한 이스라엘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믿음에 성공한 이스라엘이 성경의 저자들이며 최고의 모델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유대 절기를 따르셨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이스라엘의 성인식으로 알고 있는 ‘바 미츠바’는 실상은 ‘말씀의 아들이 되는 의식’이다. 유대인들이 13세에 바 미츠바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모세오경(토라)을 다 암송해야 한다. 예수님이 12살에 성전에 올라가신 것은 토라를 다 암송하신 상태에서 ‘바 미츠바’를 위해 가셨던 것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그것은 권위있는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신뢰받는 해석”이라며 “예수님은 아주 많은 상황 가운데서 말씀을 암송으로 인용하셨다. 다윗도 모세오경을 암송하면서 영감을 받아 ‘시편’을 기록했다. 시편의 내용을 잘 보면 ‘토라’를 인용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 베드로, 요한도 토라 암송자들로써 자신들의 서신서 속에 암송된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성경의 저자들 즉, 믿음에 성공한 선조들 및 예수님을 본받아 앉고, 길을 걷고, 눕고, 일어설’ 때마다 말씀 암송하며 하나님과 동행하자”고 했다.
지용훈 목사는 “‘복음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많지만, ‘복음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1963년도에 태어나서 30년 동안 ‘주일 결석이 거의 없는 모태신앙인’이었지만 거듭나지 못한 상태였기에 예배 중 가장 싫었던 시간이 회개하는 시간이었다”며 “회개해 봤자 회개한 죄를 또 범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1992년 30세에 이태리 유학자금을 벌기 위해 교회를 직장으로 일하러 들어갔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회개를 당하게 되었다. 회개조차도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의도와는 달리 극적으로 거듭난 후 변화된 복된 삶을 살다가 5년 뒤에 1997년도에 복음의 온전성을 성령님으로부터 조명받고 나서 자연스럽게 전도자와 암송자가 되었다. 복음을 온전히 경험하면 누구나 전도하게 되고 자동적으로 말씀을 사랑하게 된다. 복음의 합당한 생활은 누구의 강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라며 “성경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모든 말씀이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글자들을 우리의 입으로 소리 내서 ‘앉고, 길을 걷고, 눕고, 일어설’ 때마다 선포할 때,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시력이 안 좋은 양들은 목자를 따라갈 때 소리를 듣고 따라간다. 나는 나의 앞을 보지 못하는 양처럼 목자의 소리만을 따라가고 싶어서, 이스라엘이 쉐마에 순종하여 모세오경을 통째로 암송했듯이, 성경 말씀을 권별로 암송하며 앉고 길을 걷는다”고 했다.
이어 “그러는 중에 내 입에서 선포되고 있는 바로 그 말씀을 현실에서 -시간의 차이가 없이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현상을 비일비재하게 루틴으로 경험하게 되며, 그럴 때 현실과 일치된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며 “1997년 이후 말씀을 권별로 통째로 암송하게 된 이유는 나의 의도가 아니라 전적인 성령님의 이끄심이었다. 결국에 나의 ‘권별암송신앙’이, 이스라엘이 쉐마에 순종하여 모세오경을 암송한 신앙과 닮아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고나서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 목사는 “쉐마에 순종하여 ‘권별암송신앙’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은, 앉고 길을 걷고 눕고 설 때마다 권별로 암송하는 신앙을 통해 자기중심성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복음서 속의 베드로는 실패한 모습이다. 그는 인생 전체를 걸고 예수님을 따른 수제자였고, 병도 고쳤고, 귀신도 쫓았고, 물위도 걸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지식적으로 알았고, 말씀(성령)도 받았지만, 말씀(성령)안에 자신이 완전히 잠기지는 않았다”며 “그 결과 그는 결국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저주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사건은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이 완전 실패자임을 자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드디어 그는 예수님 승천 직 후 진정한 회개로 온전히 기도에 힘쓰며 승천 직전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침례를 구했다. 그리고 결국 성령침례를 받고 나서 비로소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게 되어 믿음에 성공자가 된 후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역사 가운데 예수님을 제외하고 어떤 사상가도 사역자도 어떤 신학이나 무브먼트나 훈련 프로그램도 완전한 것은 없었다. 완전한 말씀의 중요한 한 부분일 뿐이었다. 물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중요한 부분들을 통해서 완전하게 역사하셨다. 하나님만이, 말씀 자체만이 온전하며 영원”하시다며 “완전치 못한 어떤 사상, 신학, 무브먼트, 훈련 프로그램이라는 부분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내가 말씀(하나님)을 읽지 말자. 오히려 완전하신 말씀(하나님)이 나를 읽으시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쉐마에 순종하는 권별 암송신앙인 것이다. 그것이 말씀을 통해 자기의 선입견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 말씀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지용훈 목사는 “장면, 무대를 뜻하는 ‘씬’(scene)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스케네(Skene)다. 이방신에게 인신제사를 드린 후 난잡한 성적 행위를 한 여사제들이 원형극장의 무대에 올라와 황제 앞에서 춤과 노래와 연극을 한 장소가 스케네”였다며 “그리스 원형극장의 무대였던 스케네는 현대공연예술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데, 헬라어 스케네가 영어 스펠링 scene 로 발음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스케네는 원래 신약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장막’의 어원이다. 즉 제사장들이 토라를 암송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장소가 스케네였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면서 장막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고, 장막(스케네)이라는 단어가 이방나라로 흘러들어가서 이방신에게 제사드린 후 뒷풀이 한마당을 벌이게 된 공연 장소로 변질이 된 것이고, 그것이 현대의 모든 공연 예술이 펼쳐지는 장면 무대(Scene 스케네)로 변질이 된 것”이라며 “이 세상 모든 공연 및 극 예술이 펼쳐지는 장면 무대(Scene)의 어원은 원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처소였던 것이므로, 현재 모든 공연 예술 퍼포머들이 악보나 대본을 암송해서 무대 장면(Scene)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장막(스케네)에서 제사장들이 메뉴얼인 레위기 말씀을 암송해서 제사의식을 치루면서 하나님께 나아간 오리지널 예배를 연상하게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므로 장면 무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크리스챤들이 제사장 정체성을 가지고 성경암송자가 되어 중무장하여 장면 속에 들어간다면, 그 장면의 세계를 장막으로 구속하게 되어 그 분야 속에서 영혼 구원의 역사들이 나타날 것”이라며 “그러나 쉐마 암송신앙으로 무장하지 않고 대본으로만 무장하여 장면(스케네)에 들어간다면, 우상숭배의 현장이었으며 현대공연예술의 모체였던 그리스(헬라)의 스케네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클 것”이라고 했다.
지 목사는 “스가랴 9장 13절의 ‘시온의 자녀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는 그와 관련된 구절이다. 시온의 자식들(유대인들)은 역사 이래 오랜 세월동안 지금껏 수많은 인본주의 및 헬레니즘적 제국들로부터 물리적 차원에서 짓밟혀 왔다”며 “스가랴서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때에 선택받은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이는 마지막 때에 불의 심판이 묘사된 말라기 4장의 예언과 관련이 깊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 엘리야를 보내셔서 아비들과 자녀들을 서로에게 돌이키게 하실 것인데, 시온의 자식들(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존하여 오신 방법으로 하실 것이라고 말라기 4장 4절에 정확히 표현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모세에게 명령하셨던 법(토라)을 기억하게 하신 방법인 암송신앙으로써 쉐마의 회복”이라며 “주전 15세기 경, 모세 때 기록된 토라 전체를 주전 4세기 말라기 선지자가 등장하기까지, 1000년 동안 모든 세대에 걸쳐서 쉐마 신앙으로 암송하여 성경을 간직 사수 보존 전달하여 기억해 온 백성들에게 다시 ‘기억하라’로 명령하신 것이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때에는 헬라적 차원의 말씀 먹기를 내려놓고, 시온(히브리)의 아들들이 말씀을 간직해 온 방법인 쉐마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프레이즈 게더링은 흩어져 힘을 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기독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연합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힘있게 뻗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예술 선교단체이다. 현재 이들은 카페 히브루스에서 격월로 다양한 영역의 기독예술가들을 초청해 함께 문화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한, 기독문화예술인의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아티스트 개더링’을 매해 진행하고 있으며, 기독 예술의 연합에 중심을 잡아줄 연합 기관으로 ‘한국기독음악협회’(K-CCM)의 발대를 위해 함께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