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한 의학자인 시게오 박사는 자신의 책 <뇌내혁명>에서, 모든 사건을 '마이너스(-)로 생각하지 말고, 플러스(+)로 생각하라'고, 권하고 있다. 즉,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것이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지 간에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유익과 복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된다'는 뜻이다.
'피그말리온효과'(Pygmalion effect)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생각하고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의학에서 사용하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네가 믿은대로 되리라' '네가 말한 대로 이루리라' 이렇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내재된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을 항상 플러스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드러내어 긍정적으로 말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롬 8;28절에 있는 말씀은 보석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주어(主語)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일은,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파가 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플러스적인 하나님의 사람은 그 추운 겨울 속에서도 봄을 미리 보는 사람이다. 눈보라 속에서 아지랑이를 생각하고 고드름을 보며 개나리를 잉태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겨울속에서도 봄을 생각하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밤'을 싫어한다. 그러나 플러스적인 하나님의 사람은 칠흙같이 어두운 밤속에서도, 찬란한 새벽을 상상하고 꿈꾼다. 추운 겨울도 어두운 밤도, 봄과 새벽을 출산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믿기 때문이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 하나는 '플러스적인 관점'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결코 환경이나 여건이 원만하고 좋은 분들은 별로 없었다. 다만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시각을 선명하게 소유하고 있었을뿐이다. 동일한 사건이나 사물을 보고도 낙망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하고 희망에 부푼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건이나 사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나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수 있다.
믿음이란 산을 평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힘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산을 보면 평지로 보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 때에 천지 지으신 여화와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산 같은 문제가 있어도 플러스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태산 속에도, 길이 보이는 것이다. 아니면 태산을 뚫고 갈수 있는 힘을 더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감사할뿐이다.
사물을 물리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언제나 마이너스 인생을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풀러스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건이나 문제를 바라보면 사건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통찰하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혜안(慧眼)을 소유하게 된다. 그 결과 어려운 일도 안되는 일도 막히는 일도 다 ~ 합력하여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실 것이라' 믿고 기다리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플러스 인생'이다.
'안 될거라' 생각하고 말하는데 어찌 잘 되겠는가? '큰일 났다' 말하고 생각하는데 어찌 큰 일이 안 나겠는가? 모든 일의 현재만 바라보고 낙망하고 불평하는데 어찌 그 사건과 고난을 통해 큰 복을 더하시겟는가?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는가? 하나님도 플러스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며 창조적인 관점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을 도우시며 복에 복을 더하신다. 사람은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한다. 반대로 플러스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비상할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날아가는 새'를 먹이시지 '졸고 있는 새'를 먹이시지 않으신다.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어린이 만화영화 캔디의 노랫말처럼 우리가 진정 믿음의 사람이라면 슬퍼도 외로워도 힘들어도 울지 말아야 한다.
왜? 하나님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계셔서 나의 삶에 궁극적으로는 플러스가 되시기 때문이다. 혹독한 시련, 처절한 고통, 기막힌 문제. 막막한 현실 + 하나님 = '해결'이라는 공식을 적용시키면 우리의 문제들은 쉽게 풀릴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플러스'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플러스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믿음'과 '긍정적인 언어'를 가지고 살면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궁궐 같은 삶을 살게 하시고 추락하는 사람에게는 날개를 달아 주신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여건이라도 마이너스로 생각하면 '불행하다' 말할 수 있지만 반대로 플러스로 생각하면 오히려 '행복하다' 말할 수도 있다. 나는 현재 빈곤층에 해당하는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 날마다 힘들고 날마다 궁핍하고 날마다 외줄타기와 같은 삶을 영위한다. 이렇게 궁색하게 사는 것을 결코 자랑하거나 즐기는 것은 아니다. 아주 불편하고 힘들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플러스 생각'을 주신다. 그것이 최악의 상황에서 나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하루도 못 살것이다. 환경은 '마이너스'이지만 생각과 마음만은 '플러스'되게 하시니 그것이 축복이 아닌가? 비록 소파에 누워 새우잠을 잘 지언정 단잠을 주시고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을지라도 꿀맛을 주신다. 그 은혜면,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궁핍하지만 남을 도울수 있는 예수의 심장을 주심도 감사의 이유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경제에 있어서도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살아야 도울 힘도 있고 불신자들에게 전도의 문도 열리고 주의 영광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궁핍하게 살면서도 믿음을 순결하게 지켜 나가는 것도 귀하지만 사역과 복음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복이 필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속에 슬그머니 들어와 '마이너스 생각'(비교의식+열등감)을 심어주어 우리를 넘어 뜨린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플러스 마음'을 주심으로 우리를 일으키신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게 하심으로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고 자족하게 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천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