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목사 칼럼] 목회자 범죄에 대한 자기반성

교회, 남의 죄 논하기 전 먼저 통렬한 자기반성 앞서야
김종민 목사ㅣ애틀랜타성결교회 담임

목회자는 사회지도층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지도층이라 함은 남들에게 인사를 먼저 받는다거나 줄을 서지 않고 먼저 입장할 수 있다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종교에 기초한 희생과 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임으로써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지도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매스컴에서 나오는 목회자의 모습은 사회지도층이 아니라 사회 불안 요소처럼 보인다. 목회자의 성범죄, 살인, 배임과 횡령, 논문표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정치참여는 그 어느 집단의 일탈 행위보다 훨씬 더 눈에 뜨인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제가 매스컴의 악의적이고도 선정적인 보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가 오히려 역차별을 받아 '침소봉대(針小棒大)'되어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하려면 먼저 타 종교나 다른 집단과 비교하여 나타나는 범죄율과 보도비율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그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냥 심정적인 억울함으로 우리만 탄압받는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할 뿐만 아니라 설득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이 세상은 기울어진 경기장이다.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공격 받고 작은 문제가 큰 문제로 부풀려지는 것은 성경대로 말한다면 말세에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다. 이에 대해 불필요하게 분개할 필요가 없다. 기울어진 경기장이 불공평하다고 탓하기 보다는 그곳에서 우월하게 경기할 수 있는 성령의 날개를 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목회자의 심각한 범죄 행위가 무분별하게 수준 미달의 목회자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개신교회는 개교회주의, 교파중심 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에 목회자 양성과정도 많이 차이가 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장 경험을 하고 어렵게 시험을 쳐서 목회자가 되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학력인정이 되지 않은 신학교를 거쳐서 안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목회자의 자질과 수준이라는 것은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 몇 년을 공부했느냐에 따라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정규과정을 거쳐도 문제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단기간의 과정을 거쳐서도 성실하게 목회를 잘 하는 사람도 많다. 곧 교육 수준이 목회자를 성직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기간이 길면 길 수록 여러 번 검증 받고 걸러질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질 뿐이다.

그리고 목회자의 범죄들에 대해서 교회는 늘 '일부'의 문제일 뿐, 성실하게 목회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매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마음을 스스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한 지체다. 목회자와 교회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 스스로가 일부 교회, 일부 목회자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교회는 서로 지체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교회는 일부를 논하기 전에 먼저 통렬한 자기반성이 앞서야 한다. 어떤 목회자가 안수 받을 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고 다짐을 했겠는가? 그들도 똑같이 그리스도의 길을 가고자 했을 것이다. 유혹과 파멸의 길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한 발짝만 잘못 내디디면 빠질 수 있는 곳이다.

'일부'라는 방패막은 내부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사랑과 희생을 실천할 때, 사회에서 그들은 일부일 뿐이라고 교회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남의 문제도 내탓이요라고 마음 아파해야 하는 것이 성직자일진대, 성직자가 자신들의 범죄를 먼저 일부 개인의 범죄로 치부한다면 세상은 교회가 아직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팔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대해 회개를 외치지만 세상은 그런 목회자와 교회의 진심 어린 회개를 원하고 있다. 늘 목이 터져라 회개의 기도를 올리는 교회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통하지 않는다면 분명 교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교회의 억울함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바라는 것은 교회를 통해 회개의 모범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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