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 등 국민적 공분을 사는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흉악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에 따른 것인데 범죄 예방과 억제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일 국무회의에서 “흉악 범죄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와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라며 “사이코패스 범죄, 반사회적 성향에 따른 ‘묻지마식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에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 도입으로 화답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1997년을 끝으로 한 건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최근 잇따르는 강력범죄에 다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당장 사형제를 반대하는 EU 등과 외교·통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무기징역이 실질적인 최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기징역에도 맹점이 있다. 수형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종신형이라 부르기 곤란하다. 법무부가 공개한 ‘2023 교정통계 연보’에 따르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가석방’된 사람이 최근 6년 새 116명에 이를 정도다.
무기징역형을 받은 흉악 범죄자가 감옥에서 치른 20년간의 옥고는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회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법이 그를 ‘가석방’으로 옥에서 풀어 사회에 돌려보내는 건 전자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에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 범죄를 저지를 당시에서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쁜 상태가 되는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법체계라면 무고한 생명을 해치고도 뉘우치지 않는 이들을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가석방’은 불완전한 제도로 보인다.
‘가석방’의 취지는 죄를 뉘우치고 깊이 반성하지 않는 사람을 인권 차원에서 다시한번 기회를 주는 데 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수형 태도는 좋은 데 그것이 조기 출소라는 목적을 위한 위장이라면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기 힘들다는 함정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다시 나왔을 때 재범 가능성을 예상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과 집단에 대해 복수하려 한다면 죄 없는 많은 사람이 2차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지금 묻지마 칼부림 사건 등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모두 이런 ‘가석방’의 허점과 결부된 건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되면서 범법자들이 법에 정한 형량을 두려워하지 않는 심리가 반영된 부분이 분명 있다. 범죄자들이 우습게 여기는 법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강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게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다. 이 제도는 예전에도 사형제를 대체하는 방안으로 거론되긴 했으나 지난달 2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언급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한 장관은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괴물을 영원히 격리하는 방법”이란 표현으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조계도 반기는 분위기다. 최근 여러 재판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 입법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형태의 무기징역 제도’를 조속히 입법해 국민의 안전을 지켜달라는 재판부의 당부가 잇따랐다. 법무부가 당정 협의를 거쳐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과는 별개로 최근 국회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신설하는 법안이 발의된 점도 주목된다.
그런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천주교인권위원회 등 9개 시민단체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에 대해 “헌법에 반하고 형사정책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형벌제도”라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인권이 있음을 강조한 건 데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은 도외시한 주장이란 비판이 나올만하다.
국민 대다수는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흉악 범죄에 대해선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범죄자의 칼끝이 언제 어디서 나와 내 가족을 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법마저 무기력하다면 누가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냐는 거다.
다만 형벌이 만능은 아니다. 형벌 수위가 범죄를 막을 유일한 키일 순 없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살인 등 흉악 범죄자에게 법과 공권력은 반드시 따끔하고 강력한 제동장치가 돼야 한다. 그래야 범죄를 용납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